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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기] 주님이 설정하신 복

하나님과 만물에 대한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기가 아닙니다.

모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고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했으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을 행하게 하심이라”(신29:29). 세상에 완벽하게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존재를 아느냐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사치스런 물음일 수 있습니다. 무에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무도 아시고 존재도 아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겐 그 모든 것들이 적당히 가려져 있습니다. 억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전지는 최적이 아니기에 희미한 지식이 부여된 것입니다.

가정예배 드릴 때마다 자식들은 늘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성경이 계시한 부분까지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더 많이 알고자 성경이 그어 놓은 침묵의 경계선을 출입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것이라는 엄포용 멘트까지 때때로 날립니다. 물론 우리의 무지를 가리고 정당화할 핑계의 빙거로서 신명기의 본문을 오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지식의 적정선에 머무는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어쩌면 어릴 때일수록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고 지식이 많아지고 책임이 커지면 적정선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 적정선 고수의 다짐이 서서히 희석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앞에서 언급한 모세의 글을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적당히 계시하신 목적이 완전한 지식을 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계시를 따르는 것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원하는 지식의 완전함을 위하지 않고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불변적인 규범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고자 하면 성경의 섬세함은 결코 빈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말씀을 준행하려 할 때에 말씀의 본질에 더욱 다가가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온전한 지식이 정보의 분량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로 살아가길 원하시는 앎의 목적과 관계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나 목회자가 성경의 배경을 조금 더 안다고 할지라도 목이 뻣뻣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설득력과 열매에 있어서 훨씬 낫습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돌아보면, 적나라한 노출보다 적당한 오묘함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위해서는 훨씬 유익한 것 같습니다. 지식의 정교함을 높이는 노력보다 순종의 온전함에 집중하는 태도가 하나님 지식의 보다 높은 경지까지 이른다는 것도 어느 정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저녁에 죽어도 좋을 도의 깨달음은 인격과 삶의 변화와 관계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만물에 대한 지식의 적정한 분량은 우리에게 최고의 복이 되도록 주님께서 설정하신 것입니다.

한병수 박사/칼빈신학교
aposo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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