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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스토리] 나폴레옹이 사랑한 '버건디' 와인

배문경 / 법무법인 김앤배 공동대표변호사·GL 와인클럽 회장

와인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버건디'다. 프랑스 부르고뉴주는 보르도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포도주를 생산한다. 이 부르고뉴가 바로 영어로는 버건디(Burgundy)라고 한다.

특히 버건디는 세계를 주름잡던 나폴레옹이 가장 애호했던 와인이다. 지형과 토양이 다양해 생산되는 포도주도 수천.수만 가지이고 많은 와인 전문가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고 마시는 와인이 버건디다.

버건디의 포도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포도의 품종은 레드 와인이 피노누아 화이트 와인이 샤르도네 보졸레 와인이 가메다. 보르도 와인은 두 세 품종의 포도를 섞어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부르고뉴 와인은 한 품종의 포도만으로 포도주를 만든다.

또 보르도는 보르도 샤또를 중심으로 큰 규모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지만 부르고뉴에서는 포도밭이 작은 단위로 나뉘어 있고 포도 재배와 포도 제조가 따로 이뤄진다. 따라서 제조업자에 따라 포도주의 품질이 달라지고 또 와인병에 붙는 레이블에 항상 테루아 즉 생산지를 가장 크게 표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요 생산지는 샤블리 코트 드 뉘 코트 드 본 보졸레 코트 뒤 샬로네즈 마코네 등이다. 샤블리는 비교적 북쪽에 있어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해마다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이곳에서는 품질이 좋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황금색을 띠며 신맛이 강하고 뒷맛이 신선하고 깨끗하다. 코트 드 뉘에서는 레드 와인을 코트 드 본에서는 화이트 와인을 주로 제조하는데 모두 맛이 뛰어나다. 그중에 레드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코트 드 뉘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무엇이 버건디를 세계 최고의 산지로 만들었을까 부르고뉴의 와인 산지는 유럽의 와인 생산국들이 대개 그렇듯 아주 오래전인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많은 에피소드와 우여곡절이 담긴 부르고뉴의 와인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부르고뉴 와인 문화가 기원후 오랜 기간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했을 동안 그들을 통해 일찍부터 이뤄졌다. 그 뒤 포도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수도원이 많이 생겨난 6세기에 획기적 발전을 이룩했다. 둘째 사원으로 인한 융성기를 지나 14세기 중반에서 15세기까지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시기에 부르고뉴 공국의 위엄은 북부 프랑스 대부분 그리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까지 뻗어 있었다.

세 번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고뉴 와인 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부자와 사원이 소유했던 포도밭은 농민들에게 쪼개 나눠주고 나폴레옹 법전에 의해 아버지가 죽으면 즉시 토지는 아들들에 의해 다시 분할됐다. 이로 인해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영세화를 면할 수 없게 됐는데 같은 이름의 포도밭이라고 해도 수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고뉴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알려진 '로마네 콩티'가 위치한 곳이다. 약 5500평의 작은 포도밭에서 1년에 5000병 정도만 생산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경매에서 1945년산 한 병이 무려 약 1억3000만원에 팔렸을 정도로 세계 최고가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로마네 콩티에 2010년 괴문서 하나가 날아들었다. 소중한 포도나무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1억 유로(1400억원)를 내놓으라는 협박이었다. 로마네 콩티의 소유자 오베르 드 빌랜은 처음에 협박을 농담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두 번째 편지에 동봉된 지도 속 포도나무를 살펴보니 실제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한 것이 확인됐다. 결국 정보기관에 연락했고 사안의 중대성에 공감한 정보기관은 유능한 요원을 파견해 한 달 뒤 가짜 돈을 건네는 척 하다가 범인을 잡았다.

그는 와인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50대 남자로 밝혀졌고 실제로 그가 훼손시킨 나무는 네 그루였으며 포도밭 옆에 구덩이를 파 만든 은신처에 머물며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사건 뒤에도 부르고뉴의 포도밭이 예전처럼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바로 그것이 부르고뉴의 자랑스런 전통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고뉴와 버건디의 신화가 지구상에서 포도주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영원히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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