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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자니 윤의 '노익장 코미디'

박용필/논설고문

"이젠 집에서 손주나 보며 쉴 때도 된 거 아냐."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올해 81세. 진보성향의 연방 대법관이다. 얼마 전엔 자신의 롤모델이 존 폴 스티븐스라고 밝혀 파장을 낳았다. 90세가 넘어 은퇴한 전 대법관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10년 쯤은 더 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거나 다름없다.

이 말에 실망한 측은 진보 쪽이다. 진보성향의 대법관이 오래 자리를 지키면 좋아할 것이지 왜 싫어한다는 걸까. 긴스버그가 계속 버티고 있다가 자칫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기라도 하면 진보 쪽은 그야말로 낭패다. 그의 후임으로 보수 쪽 인사가 지명될 가능성이 커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할 때 물러나면 진보성향의 법관이 임명될 터. 그런데도 요지부동이다.

긴스버그의 별명은 '철의 여인.' 대장암에다 췌장암까지 앓았지만 거뜬히 이겨냈다.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출근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언제 은퇴할 거냐는 질문에 코미디언 못지않은 재치로 맞받아쳤다. "몸 속의 독소가 몽땅 빠져나가 내 건강은 지금이 최고다."

대법원에서 긴스버그의 맞수는 앤토닌 스캘리아. 보수성향으로 79세다. 그 역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기 전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고 선언할 만큼 고집불통이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70~80대가 4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최근들어 젊은피가 몇 명 수혈됐다고는 하지만 대법원의 평균연령은 69세다.

알려진 대로 대법관을 비롯한 연방판사들은 종신직이다. 개헌을 해 나이제한을 하자는 캠페인이 일기도 했으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 지금은 잠잠하다. 하지만 주 법원 판사들은 정년제(70~75세)다. 요즘은 연방의 종신제가 맘에 들었는지 정년을 늘려가는 추세다. 뉴욕주 판사들은 80세가 정년이다.

나이에 관한 한 미국서 로널드 레이건을 뛰어넘을 만한 인물은 드물다. 재선에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73세. 치매 초기증상을 앓고 있어 백악관 보좌관들도 황당해 하고 있다는 등 루머가 파다하게 나돌았다.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이 TV 토론회에서 나이를 문제 삼았지만 오히려 레이건에 한판 크게 당해 머쓱해졌다. 레이건은 "나는 나이를 절대 정치적 이슈로 삼지 않겠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상대후보가 너무 젊어 국정경험이 적다는 걸 탓하고 싶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먼데일 조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니 윤이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나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야당의원의 "노익장이 무슨 뜻인줄 아느냐.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등 노인폄하 발언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노익장을 미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영 올드(young old)'가 될성 싶다. (생각은) 젊지만 (몸은) 늙었다고 할까. 레이건이나 긴스버그 모두 '영 올드'에 속한다.

한때 자니 윤은 1980년대 자니 카슨 쇼에 나와 미국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미주한인사회의 자랑이었다. 그런 그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인신모욕을 당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재치와 총기는 다 어디가고. 빈곤에 시달리고 소외감에 빠져있는 한국노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낼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일깨워줬으면 속이 다 후련했을 텐데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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