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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세종'을 다시 생각한다

김완신/논설실장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고 태극기는 깊은 뜻을 가진 아름다운 문양의 국기라고 교육 받아왔다. 또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라고 배웠다.

학년이 오르고 머리가 커지면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올해는 단기 4347년이다. 태어날 때부터 반만년 역사였는데 죽을 날까지도 '진짜' 반만년 역사는 불가능하다. 반올림해서 반만년이 되는 4500년까지도 무려 153년이나 남았다. 태극기가 우주의 심오한 원리가 담긴 애국심의 상징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디자인까지도 아름답다는 교육은 애국심에 백번 양보해도 수긍하기 어렵다.

학창시절 받은 교육 중에서 그래도 여전히 '사실'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한글이다. 배움이 늘어도 외국에 살아도 한글은 변함없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다. 창제자와 창제시기도 정확하다. 몽골 파스파 문자와 에스페란토 등 몇몇 문자의 창제기록이 남아 있지만 현재 사용되는 문자 중에서는 한글이 유일하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한다. 영국 서식스대학의 언어 및 문자학자 제프리 샘슨 교수는 "한글은 이미 500년 전에 언어학적 원리를 적용해 제작된 우수한 문자"로 '가장 정교한 문자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글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류가 이룩한 가장 지적인 성과"라고 극찬한다.



한글은 표음문자다. 사람의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문자, 즉 소리글자다. 28개의 음소문자를 조합해 인간이 내는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이제까지 발명된 문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발음표기가 가능한 문자가 한글이다. 거기에 문자와 소리의 일치 정도를 뜻하는 표음성도 비교적 양호하다.

영어는 표음성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문자다. 영어 단어는 알파벳이 가진 음가대로 발음했을 때 일치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일일이 사전의 발음기호를 찾아야 한다. 반면 한글은 발음법에 따라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문자 그대로 읽힌다. 즉 말한대로 쓸 수 있고 읽는대로 들리는 글자라는 것이다.

몇해 전 주말 한글학교에서 SAT2 한국어반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들은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집에서 한국어를 쓰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어를 집에서 '말하고 듣는' 쪽이 '읽고 쓰기'도 쉽게 배운다. 한국어는 말을 그대로 기호화할 수 있는 문자체계여서, 말하고 듣는 연습을 조금만해도 읽고 쓰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기 때문이다. 표음문자가 아니거나 표음성이 크게 떨어지는 문자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효과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한글공부로 고민이 많다. 이민자 부모를 둔 '덕분'에 토요일 아침마다 힘들게 일어나 한글학교에 가야하는 학생들에게 '학습동기'가 있을리 없다. 일부 부모들은 학습의욕이 없는 아이를 붙잡고 강제로 한글을 읽고 쓰게 한다.

학생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억지로 '읽고 쓰기'를 시키면 오히려 한글공부에 대한 거부감만 키울 수 있다.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습의 첫째 조건은 '동기'다. 자신이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공부할 때 학습효과도 나타난다.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동기는 한류가 됐건, 직업상 필요가 됐건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어를 말하고 듣는 능력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 시기의 문제일 뿐 '읽고 쓰기'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했던 집현전 학자 정인지는 "(한글을)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에 깨칠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우수한 소리문자를 만든 세종대왕 덕분이다. 내일(9일)은 백성들이 '쉽게 익혀 쓰도록'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68돌 되는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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