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 부른 홍콩 지도층…시민은 그 앞에서 'X' 시위
우산혁명 현장을 가다
최루탄 진압 거센 반발 불러
직장인에 중노년층까지 가세
같은 시각, 바로 인근의 행정타운인 애드미럴티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등 곳곳에선 시민·학생들의 간선도로 점거 시위가 나흘째 이어졌다. 시위 군중은 낮엔 다소 줄었다가 밤이 되면 크게 늘어나는 양상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다. 낮에 귀가해 휴식을 취한 뒤 밤에 거리에 나가 밤을 새우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밤 시위대는 10만 명을 넘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시위대가 점거한 장소는 지난달 28일 이후 계속 늘어나 바다 건너 주룽반도의 몽콕까지 확대됐다. 친중과 반중으로 확연히 쪼개진 홍콩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준 국경절의 풍경이었다.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경절의 대표적 볼거리인 불꽃놀이 행사도 올해는 취소됐다. 시위 현장에는 "불꽃놀이를 해도 절대 가지 말고 TV로도 보지 말자, 그 시간에 집집마다 전등을 다 끄자"는 제안이 담긴 벽보가 붙기도 했다. 홍콩섬 중앙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진행된 문화행사와 축제도 관람객보다 출연자나 주최측 인원이 더 많아 보였다. 이래저래 빛이 바랜 국경절이 되고 말았다.
시위는 평온한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홍콩 경찰은 강제해산에 나서지 못하고 불상사를 방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점거 시위 첫날인 28일과 이튿날 최루탄으로 강제진압을 시도한 게 오히려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시위 참여 숫자가 크게 불어난 게 원인이다. 애드미럴티역 앞 광장에서 만난 대학 1년생 쉬바이시는 "경찰의 진압에 화가 나 이튿날부터 시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 숫자는 87발.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임에도 홍콩 시민들은 격앙됐다.
불상사를 우려해 강경 진압에 나서지 못하는 건 베이징의 중국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베이징에서 열리기로 돼 있다. 25년 전 천안문 사태의 비극적 결말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난 상태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행정장관 입후보자를 친중 인사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완전한 보통선거를 보장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서방식 자유선거를 허용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여파가 일어나게 된다. 중국 내부의 정치 개혁 요구는 물론 홍콩에 이은 또 다른 '일국양제'의 대상지역으로 삼고 있는 대만 그리고 소수민족 자치주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된다.
시위대 역시 여기서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1일에는 직장인과 중노년의 일반 시민까지 가세했다. 60대 잭키리는 "갈수록 중국화되고 우리의 자치권은 위축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제 행정장관은 물론 입법의원까지 중국 입맛에 맞는 사람만 뽑도록 제도화되면 우리의 자유는 어디로 가나"라고 반문했다.
이틀 동안 시위현장에서 시민·학생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홍콩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왜 중국식 방식을 강요하느냐"는 불만이 많았다. 쉬바이시는 "우리 손으로 지도자를 뽑지 못하면 홍콩인에게 무슨 장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베이징 당국과 홍콩 주민들 사이엔 좀처럼 좁혀지기 힘든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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