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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참회, 그 지난한 행사

"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 (오현 스님의 '죄와 벌' 전문)

스님이 언젠가 밝혔듯이, 날이 새면 이어지는 그 긴긴 날 배고픈 날들이 너무 무서워,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어느 절의 꼴머슴으로 들어간 이래, 스님은 근세 최고의 선지식이며 불세출의 승려시인이 된다. 한세상 농익은 속내인 참모습을 정갈하고 잘 정제된 언어로 담아내어 여운이 긴 수많은 선시를 남긴 스님이다. 그런 분이 설마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어 벼락 맞을 놈은 나라고 참회의 나날을 보낸다고 하겠는가.

시인들의 세계에서 회자하는 말이 있다. 토씨 하나를 찾아 온 우주를 헤맨다는 시 한편이 세상에 나오면, 이제 그 시는 시인의 시가 아니라, 그 시를 읽는 사람의 시가 된다는 말이다. 이로 생각건대, 벼락 맞을 놈과 오늘도 하루해를 참회로 보내야할 놈은 바로 그 시를 읽는 '나' 자신이 되고 만다.

대체로 사람들은 혀와 몸과 생각으로 크고 작은 허물과 죄업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솔한 참회가 주는 통쾌한 공허감과 그 은밀한 해방감을 누리지 못한 채, 어쭙잖은 자만과 자존에 속박되어 머뭇거리는 이성과 양심의 불편한 방황 속에, 체한 듯 더부룩하고 무거운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참회란 인도 범어 크샤마(ksama)를 한자말 '참마'로 음역한 것이며 크샤마는 원래 '참는다'는 뜻이다. 그 후 '마'를 '뉘우치다'는 뜻인 '회'가 대신하여 참회(懺悔)가 된 것이다. 따라서 참회의 본래의미는 불보살과 대중에게 '죄를 깊이 뉘우치니 참고 용서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사라 하겠다.

불교의 참회는 단순한 반성과 뉘우침이 아니다. 자기정화라는 경건한 종교의식으로, 크게는 한 개인의 영적 '거듭남'의 토대가 되며 해탈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불교수행법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참회는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인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 참되고 사무친 자기성찰이어야 한다. 불가에서는 참회 중, 전신에 미열이 나고 눈물이 나면 하위참회이고 몸에서 땀이 솟고 눈에서 피가 스미어 나오면 중위참회, 그리고 온몸과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참회를 최상위의 참회라 하여 진실성과 진정성이 참회의 관건임을 절감케 한다. 그러나 참회는 주로 자발적이고 능동적 처사여서, 실로 냉엄하고 옹골진 용기가 없이는 자기연민에 따른 관용과 자기합리화, 자기기만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은 행사이다.

해서, '설악의 거문고 저절로 울리니/ 샘물의 향기 만 리를 흘러가'는 도량에서, 평생을 줄 없는 거문고의 청량한 소리에 눈과 귀를 씻으며 살아온 스님도, 그 행사의 지난함을 이렇게 자탄의 시로 남겨 중생들의 결연한 의지를 다그치고 다진다.

"한나절은 숲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 게 되겠습니까" ('내 울음소리' 전문)

박재욱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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