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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조의 기도 모습 그리며 사역결심"…코나 유일의 한인교회 섬기는 김교문 목사 (코나한인선교교회)

이민 선조 무덤 보며 마음 생겨, 지금은 코나에 '터' 닦는 사역
선교사가 커피 들여왔던 곳…지금은 다시 선교지로 변해

복음 전파 위해 한인교회 필요
다음 세대가 역할 맡아줘야


빅아일랜드섬 코나 지역에도 한인교회가 있다. 코나의 유일한 한인교회인 '코나한인선교교회'는 현재 김교문 목사(53.사진)가 8년 넘게 시무중이다. 이 교회는 1994년 세워진 뒤, 코나에 거주하는 50명 가량의 한인 교민을 위한 단 하나의 예배터가 됐다. 지난 14일 코나한인선교교회 주일예배 후 김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코나에서 한인교회가 갖는 의미와 역할을 들어봤다.

-왜 이곳에서 사역하게 됐나.

"한국의 산본아름다운교회서 담임목회를 하던 중 안식년 때문에 이곳에 잠시 온 적이 있다. 그때 이 교회를 알게 됐는데 목회자들이 적응을 못 하고 자꾸 떠나다 보니 목사 없이 교회가 운영되고 있더라. 마음이 아팠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어느 날 여기서 날 불렀다. 마음이 가니 안 올 수가 없었다(웃음)."

-교인은 얼마나 되나.

"여기는 거쳐가는 곳이다. 인근에 열방대학이 있어 잠시 공부하러 오는 학생 또는 자원봉사자들이 오기도 하지만 실제 이곳에 거주하면서 출석하는 교인은 30여 명 정도다."

-목회가 쉽지는 않겠다.

"어느 날 이 섬에 있는 한 미국 교회 묘지에서 한인 이민 선조의 무덤을 보게 됐다. 선조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모습과 신앙생활을 통해 나라를 그리며 기도했던 모습을 문득 떠올렸다. 그 모습은 오늘날 이민자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을 두게 됐다. 땅을 사랑하니까 할 일이 보이더라. (웃음)"

-어떤 할 일이 보였나.

"코나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몇 해전부터 우리 교회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열방대학 한인 학생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사물놀이도 하고 한국문화도 알리며 전도를 한다. 그건 다음 세대에게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심는 계기도 된다."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태어날 때 정할 수 없는 게 부모, 형제 그리고 조국이다. 특히 이민자에겐 이것을 위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건 이민교회를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이기도 하다. 이민교회는 세계 각지에서 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땅의 축복이 돼야 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한 인프라 또는 '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민자를 위한 이민교회만의 역할인 셈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나 같은 1세는 '터'를 닦는 역할일 뿐이다. 이곳 사역은 길게 봐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리더를 세우고, 한인과 이 지역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역할 수 있는 다민족 공동체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우리 교회 아이들의 이름을 주보에 한 명씩 다 싣고 있다. (웃음) 다음 세대의 한인교회는 그 역할을 맡아야 하고, 이끌어야 한다. 이곳은 다시 선교지가 됐기 때문이다."

-다시 선교지란 의미는.

"이 섬은 원래 선교사의 헌신으로 복음이 전해진 섬이다. 1828년 사무엘 구글러스라는 선교사가 복음과 함께 커피를 처음 들여왔다. 코나가 커피로 유명해진 이유다. 게다가 옛 원주민들은 이 섬을 '신이 머무는 장소'라 생각했었다. 상당히 영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금의 코나는.

"코나에는 이민자의 애환뿐 아니라 영적으로 슬픈 역사가 있다. 첨엔 원주민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교회가 서서히 비즈니스화 됐다. 그러면서 신앙과 삶의 괴리가 생기게 됐다. 이후 원주민들은 기독교인의 그릇된 삶을 보며 실망했고 신앙을 버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독교가 많이 약화됐다. 오히려 행위적으로 깨끗해보이고 표면상 이미지가 좋아보이는 이단 종교가 많이 들어와 있다. 안타깝다."

-목회 일과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아름다운 코나 해변에서 교인들에게 침례를 준다(웃음). 구역예배와 심방도 하고 성경도 가르친다. 한인 농장주가 운영하는 '코나헤이븐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기도모임도 갖는다. 카페가 열방대학 근처라 한인 학생도 많이 참석한다."

▶후원문의:(808) 990-5300

빅아일랜드 코나=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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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신앙으로 시작된 이민생활
기독교인 다수였던 이민자
코나 곳곳 선조들의 무덤도


1901년, 당시 조선땅은 대기근으로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왕실 주치의였던 알렌 선교사는 하와이의 노동력 부족을 들어 고종을 설득, 황성신문에 이민 모집 공고를 낸다.

1902년 12월22일. 그렇게 모집된 121명의 조선인은 갤릭호를 타고 제물포를 떠난다. 이듬해인 1903년 1월13일,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한인 이민자 93명(신체검사 등으로 28명은 탈락)이 하와이 땅을 밟게 된다. 그때 이민단을 인솔한 이들은 인천내리교회 장경화 전도사, 안정수 권사, 홍승하 전도사 등 기독인들이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1903년 11월3일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세워지면서 하와이에 최초의 한인교회가 설립된다. 이들의 이민생활은 기독교 신앙과 함께 한인 이민역사의 기념비적인 발단이 된다.

당시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던 한인 이민자들의 임금은 하루 70센트였다. 그럼에도, 1903년 감리교 현순 목사와 함께 63명이 2차 이민을 오게 되고, 이어 1904년(3434명), 1905년(2659명), 1905년(288명) 등 7000명 이상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발을 디디게 된다.

김교문 목사는 “현재 코나에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무덤이 수십 곳 남아있다”며 “일부 무덤은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서 한인사회 및 한국정부의 관심과 지원, 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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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일랜드 코나는…

빅아일랜드 코나에는 하와이 최초의 개신교회가 있다. 1836년에 세워진 '모쿠아이카우아 교회'는 현재 코나의 유명 유적지 중 하나다.

코나에는 1820년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신학교 선교팀이 최초로 복음을 들고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1828년 사무엘 구글러스 선교사가 효과적인 복음 전도를 위해 커피를 함께 들여오면서 코나는 커피로도 유명해지게 된다.

코나한인교회는 지난 1992년 코나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성경공부를 위해 만든 모임이 모체가 됐다. 이후 1994년 2월 첫 공식예배를 통해 교회가 시작됐다. 지난 2006년 7월부터 김교문 목사와 이양순 사모가 교회를 섬기고 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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