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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의 끝인가 기괴함의 시작인가

[뉴스위크] 하이힐의 역사와 예술성을 조명하고 거기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회 열려

9월 초 브루클린 미술관의 새 전시회 ‘킬러 힐 전’(2015년 2월 15일까지)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심하게 손상된 어머니의 발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가 집에서 맨발로 다닐 때 섬뜩하면서도 호기심에 찬 눈으로 어머니의 발을 쳐다봤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발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여기저기 혈관이 불거져 나왔고 발뒤꿈치는 낡은 가죽 벨트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한쪽 엄지발가락은 까맣게 죽어가는 듯 보였다.

어머니는 족부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러 갈 때 어린 나를 데리고 다녔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어머니의 죽어가는 엄지발가락에 커다란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 사람이 어머니에게 “코르티손이라고 불리는 이 주사액은 통증을 잠시 가라앉힐 뿐 근본적인 치료제가 아니다”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주사도 듣지 않게 되자 어머니는 발가락을 수술 받아야 했다. 지금은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발을 조이는 날렵한 하이힐만 신지 않는다면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다른 많은 미국 여성과 마찬가지로 우리 어머니도 직장에 나갈 때는 꼭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고 믿었다. 굽이 높을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판매 계통에 종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하이힐을 던져버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서였다. 그들은 마침내 하이힐이 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깨달았다.

요즘은 직장 여성이 꼭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졌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정장을 처음 입기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부작용이 오래 가는 발 손상에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에는 ‘맵시 있는 하이힐을 신으려고 새끼발가락 제거 수술을 받는 것은 좋지 않다’ 등의 뻔하게 들리는 항목도 포함된다.



전시회장을 둘러보면서 어머니의 극심했던 발 통증이 생각났다. 전시회에서 상영한 단편영화 ‘스케어리 뷰티풀’은 특히 내 기억을 자극했다. 레니 반 더 바이어가 2012년 제작한 이 영화는 앞쪽에 높은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걸어보려고 애를 쓰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구두는 반 더 바이어와 네덜란드 구두 디자이너 르네 반 덴 베르크가 함께 제작했다.

여자는 구두 위에서 허리와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느릿느릿 뻣뻣하게 걷는다. 미술관 벽에 붙은 설명문에서 반 더 바이어는 이렇게 설명했다. “난 하이힐의 전통적인 기능이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어 어디서부터 섹시함이 끝나고 기괴함이 시작되는지 알아 봤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그 앞을 지나던 한 젊은 커플이 잠시 화면을 지켜본 뒤 남자가 “ ‘스타워즈’에 나오는 AT-AT(전지형 무장수송 차량) 같다”고 말했다. ‘스타워즈’에서 제국군이 사용하는 투박한 4족 보행 병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자가 “섬뜩한 장면”이라고 맞장구 쳤다.

이 전시회는 예상대로 하이힐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추적한다. 유용한 정보가 포함된 설명문과 함께 인상적인 신발들이 다수 전시됐다. 일례로 웨지힐을 발명하고 20세기에 플랫폼 구두를 다시 유행시킨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르네상스 시대 매춘부들이 좋아하던 신발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우주 산책’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는 빛을 반사하는 소재의 사용 등 우주탐험이 하이힐에 미친 미학적 영향을 보여준다. 전시장 곳곳에 전시된 우스꽝스러운 하이힐들을 바라보다 보면 소위 ‘예쁜 구두’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 신발들은 낭만적이면서도 선정적이다. 하이힐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거기 있는 듯하다.

글 = VICTORIA BEKIEM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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