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이민사 유물, 법정으로 가자는 말인가
김문호/사회부 부장
설마 설마 했지만 결국 이번 일도 그렇게 돌아가려나 보다. 유물을 독립기념관에 조건부 위탁관리 하려는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결정에 반대하는 측에서 지난 24일자로 '디멘드 레터'를 발송했다. 아직 정식소송까지는 아니지만 소송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일 공청회에서 유물의 한국행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자 '설득하고 순차적으로 풀겠다'며 USC를 방문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의견을 수렴하던 기념재단 이사진은 허탈한 표정이다. 소송이 걸리면 기념재단 측도 맞대응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급기야 유물은 사라지고 감정싸움만 깊어지는 것은 아닐는지 심히 염려스럽다. 유물을 한국으로 보내려는 기념재단 측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가 궁극적 지향점은 같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학자들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 후세들의 정체성 확립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서라도 한인사회가 유물 보존과 관리에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기자의 생각으로는 기념재단측 결정이 조금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유물은 선조의 발자취이고 얼인 만큼 자존심을 걸고 미주한인사회에 남겨야 한다'는 반대쪽 의견도 훌륭하다. 하지만 한인사회에 그럴 만한 시설이 없고 연구 인력이 부족하며 유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만한 자금 확보가 어렵다는 점은 큰 걸림돌이다. 당장 지난해 발표된 한미박물관 건립도 자금확보 등에 어려움이 커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수장고가 없으니 USC나 UCLA 같은 대학에 맡기자는 대안이 나왔다면, 똑 같은 이유로 잠시 조국으로 보내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대학 측의 1차적 관심은 연구를 위한 자료 접근이지 오리지널(유물 원본)보존.보관에 있지 않다. 기념재단과 독립기념관 측은 USC나 UCLA는 물론 전세계 학자들의 연구를 돕기 위한 모든 자료를 보존 처리 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방침이기도 하다. 인덱스 작업도 표준화한 방법이라 누구라도 접근이 용이하다는 게 독립기념관 측 설명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국민회관 다락방 공사 중 발견된 2만여 점의 유물은 초기 한인이민사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들이다. 그런 유물이 한국에서 연구되고 알려진다면 미주 한인 후세들의 교육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미주 한인과 그들의 이민 선조들이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기자가 유물의 한국행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또 있다. 기념재단 측 이사들이 계획하는 청사진이기도 하지만 유물을 보낸 후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기념관 시설을 확충해 역사교육의 산실로 꾸미겠다는 의욕이다. 유물을 한인사회에 남겨 자존심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사실 LA인근을 포함해 남가주에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를 함께 기억할 만한 장소는 국민회관 기념관이 전부다. 현재 전시.관리되고 있는 것도 이미 한국 정부의 예산지원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지금의 한인사회가 유물을 이곳에 남기고 과연 그런 역할까지 두루 해낼 수 있다면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번엔 한국으로 보냈다가 조건을 갖췄을 때 돌려받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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