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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지쳤나요? 빨리 '손'을 써야겠군요

정교한 손놀림의 건강효과

현대인의 뇌 건강이 위기에 빠졌다. 청소년의 주의력결핍과 충동성, 중년의 건망증·우울증, 치매는 이미 국민병이 됐다.

뇌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없는 탓이다. 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강한 자극에만 반응해 감각이 무뎌지는 '팝콘브레인',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 같은 신조어가 위기에 직면한 뇌를 대변한다. 정체된 뇌를 깨우는 인체의 비밀은 다름 아닌 '손'이다.

손글씨 쓰기, 뜨개질, 바느질, 목공예, 악기 연주, 종이 접기, 화초 가꾸기 같은 정교한 손놀림은 뇌와 긴밀하게 교감하는 연결고리다.

어린이 두뇌·인성 발달부터 직장인의 스트레스 해소, 노인의 치매 예방을 돕는 손쉬운 방법이다 .내 몸의 건강 스위치, 손을 깨우면 뇌 건강이 보인다.

● 손 많이 쓰면 뇌세포 자극

서울시 도봉구의 한신초등학교. 개교 이래 40여 년째 이어온 글씨 쓰기 교육으로 주목 받고 있다.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 아래 연필을 쥘 때 힘을 주고 빼는 연습, 자음과 모음을 한 획씩 바르게 쓰는 법을 익힌다. 이 학교 황병무 교장은 "글씨 쓰기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을 높인다"며 "스마트폰·컴퓨터 같은 즉각적인 반응에만 익숙했던 학생들의 산만함이 줄고 인내심이 길러진다"고 말했다.

한신초등학교는 그간 시행했던 국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3위권에 드는 등 평균 이상의 학업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황병무 교장은 "몸에 밴 글씨 쓰기 습관이 끝까지 마무리하는 책임감과 집중력으로 이어지면서 학습 효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손을 움직이는 것은 효과적인 두뇌학습법이다. 한국뇌연구원 서유헌(서울대 명예교수) 원장은 "집중·기억·연상·운동능력을 수행하는 뇌의 다양한 영역을 골고루 자극하는 것이 정교한 손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운 것을 표현하라고 시켰을 때 입으로만 말한 아이는 33%를 기억해 낸 반면 손동작을 곁들인 아이는 90%까지 기억했고, 6개월간 피아노 레슨을 받은 아이의 그림조각 맞추기 능력은 대조군보다 34% 향상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손동작이 어휘 기억장치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인성·정서를 관할하는 전두엽 발달의 매개라는 것이다.

손과 뇌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이유는 뭘까. 인체의 뼈는 총 206개인데 이 중 4분의 1에 달하는 54개가 양손에 있다. 가천대 길병원 연병길(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관절이 많아 세밀하고 다양한 작업을 하는 손의 움직임은 뇌와 풍부한 신호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실제 운동·감각·언어·기억 같은 기능을 통솔하는 뇌의 중추신경 중 30%는 손의 움직임에 반응해 활성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성모병원 장수의학센터 유정선(내분비내과) 교수는 "양손은 신체의 작은 부분이지만 다리·몸통보다 훨씬 치밀하게 신경망이 분포돼 있다"고 말했다. 손글씨 쓰기, 뜨개질, 바느질, 목공예, 그림 그리기, 마술 같은 다양한 손놀림은 뇌세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 집중력·성취감 높여

정교한 손놀림은 스트레스를 낮춰 정서를 안정시킨다. 긴장을 많이 하는 배우·가수들이 무대 뒤에서 뜨개질로 심신을 다스린다는 일화가 많다. 손놀림이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첫째 요인은 호르몬 분비와 관련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박영호(신경과) 교수는 "손을 움직이면 뇌에서는 상황판단·감정조절에 관여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구조물이 활성화되면서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물질(부신피질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 CRH, 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의 분비가 감소해 기분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둘째 요인은 집중력을 높여 긴장·스트레스를 분산시킨다는 점이다. 유정선 교수는 "뇌는 한꺼번에 여러 활동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라며 "손을 움직이는 것이 뇌에서 상당히 많은 영역을 차지하므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연병길 교수는 "몰입하게 하는 손놀림 효과는 요가·명상에서 잡념을 없애는 것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덧붙였다.

셋째 요소는 성취감이다. 손놀림으로 완성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취감을 주면서 스트레스를 낮춘다. 연병길 교수는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감상하면서 도구를 활용해 창작물을 완성하는 것은 미적 충족감을 주면서 스스로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하게 돼 정서가 안정된다"고 말했다. 노인의 우울증을 예방하는 활동으로 뜨개질 수업을 진행하고, 손바느질·퀼트 같은 프로그램을 임산부 태교에 활용하는 이유다.

● 움직이는 만큼 뇌 노화 늦춰

손은 뇌가 노화하는 속도를 늦춰주는 항노화 도구다. 연병길 교수는 "손을 충분히 쓰지 않아 근육이 퇴화하면 뇌를 자극하지 못해 그만큼 뇌세포의 기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일례로 77~89세의 경미한 기억력 장애가 있는 200명과 인지 장애가 없는 사람을 비교했더니 중년기에 뜨개질처럼 손을 많이 쓰는 취미를 가졌던 사람은 기억력 손상이 40%가량 낮았다. 노년기 이후 같은 취미를 즐겼던 사람도 기억력 손상이 50%까지 감소했다(메이요클리닉, 2009). 유정선 교수는 "뇌가 빨리 늙으면 그만큼 육체적인 병으로 이어질 확률 역시 높아진다"고 말했다.

손은 이미 망가진 뇌세포 때문에 저하된 신체 기능을 회복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중풍·뇌졸중 때문에 위축됐던 뇌영역은 손가락 운동을 통해 회복된다(대한뇌졸중학회). 유 교수는 "죽은 뇌세포의 주변 세포들이 활성화하면서 기능을 대신한다"며 "말을 더듬었거나 젓가락질이 힘들었던 후유증이 완화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머리로 생각하며 손끝을 사용하는 섬세한 작업을 꾸준히 실천할 것을 권했다. 유 교수는 "손바느질만 보더라도 감침질을 했다가 홀치기를 했다가 예리한 눈초리로 끊임없이 작업을 따라가면서 손에 찔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땀이 비틀어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라고 말했다. 서유헌 원장은 "키보드를 치는 것 같은 단순한 활동보다 끊임없이 생각하며 양손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활동이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글=이민영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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