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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 - 워싱턴 한인사회 40년]미주 정치력 신장의 선봉…‘동해병기법’ 통과시켜

인구 40년새 10배…한인인구 30만명 급성장
교육·여성인권 운동 활발…한국과 교류도 늘어

워싱턴·볼티모어 한인사회는 지난 40년간 급성장하면서 미주 한인 정치력 신장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메트로폴리탄에 있다는 특성 때문에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한인사회의 역사는 정치력 신장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고 있다.
워싱턴·볼티모어 한인사회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미주동포 사회의 인권과 교육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문별로 지난 40년간 한인사회의 역사를 정리했다.


한인, LA·뉴욕 이어 세 번째

워싱턴·볼티모어 한인사회가 지난 40년간 겪어온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인사회의 급격한 팽창이다.

센서스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워싱턴 일원의 한인인구는 버지니아 1만2600명, 메릴랜드 1만5100명, 워싱턴DC 300명 등 2만8000명 수준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2만 명 정도의 한인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인구는 이후 이민자와 유학생의 수가 늘어나면서 2000년에는 8만5000여 명, 2010년에는 12만1441명으로 증가했다. 버지니아의 경우 10년 만에 55.9%(2만5298명), 메릴랜드는 24.1%(9437명)나 급증했다. 2014년 워싱턴·볼티모어 일원의 한인인구는 단기체류자나 서류미비자 등을 포함하면 25만~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주 한인사회 규모로 LA와 뉴욕에 이어 세 번째로 성장한 배경에는 워싱턴DC 일원의 지역경제가 타지역에 비해 튼튼해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워싱턴 지역은 2007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경제가 전국적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지역에 속한다. 연방정부와 관련한 조달사업이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어 한인들이 연방정부와 로컬 정부, 조달사업, 정보통신 관련 업체에 취업하거나 소기업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인 대형마켓 타인종 공략

한인 인구가 늘어난 만큼이나 한인 경제규모도 크게 성장했다. 1982년 한국학생회가 발행한 한인주소록에는 공공기관 및 한인단체가 120개, 한인업소는 38개 업종에 181개 업체가 기록됐다. 이같은 한인업체의 수는 이후 2000년 1400개 정도로 증가한 뒤 2010년에는 3500여 개로 급증했다. 애난데일의 경우 한인사회 상권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또 한국과 워싱턴을 잇는 대한항공의 경우 주 3회 운항하던 횟수가 주 7회 매일 운항으로 늘었고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리브라더스와 롯데마트, H마트, 지구촌마켓 등 한인 대형마켓도 급증했다. 한인마켓은 한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안과 러시아, 동유럽 이민자들을 주고객으로 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워싱턴 일원에는 한인 등 아시안과 동유럽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한인마켓이 이같은 신흥시장을 공략, 성공하고 있다. 주류사회의 대형마켓인 세이프웨이와 자이언트 등이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는 곳에 한인마켓이 입점해 쇼핑몰이 활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마크 김 등 선출직 한인 활약

워싱턴·볼티모어 한인사회의 정치력도 지난 40년간 크게 신장됐다. 마크 김이 지난 2009년 버지니아 주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해 중견정치인으로 도약하고 있다. 한인여성 선출직으로는 사상 처음 헌든 시의원에 당선된 그레이스 한 울프도 올해 3선에 성공해 주목을 받고 있다. 문일룡 변호사도 미국 공교육 중심지인 페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워싱턴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7월1일 발효된 ‘동해 병기법’을 들 수 있다. 주 의회가 법률을 제정해 주내 공립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나 지도 등 교재에 일본해와 함께 동해를 병기하도록 못박은 것은 버지니아가 최초다. 동해병기법의 제정은 지난 2012년 버지니아 주 상원에 처음으로 동해 법안이 상정된 지 2년여 만에 이룬 쾌거일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이민 역사 111년 만에 처음이다.

이 법은 한인단체들을 중심으로 동포사회가 풀뿌리 운동으로 주 의원들을 움직여 법안을 상정한 뒤 우여곡절 끝에 테리 매컬리프 주지사의 서명까지 받아냈다. 이에 따라 버지니아주에서는 한인 학생들뿐만 아니라 타인종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동해(East Sea)’라는 이름을 배우게 됐다.

미국 50개 주 중 동해 병기법이 만들어진 곳은 한 주에 불과하지만 전국적인 파급 효과를 내고 있다. 버지니아주에 교과서를 공급되는 교과서는 다른 수십 개 주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버지니아 법으로 동행병기 내용이 포함돼 다른 주의 교과서도 자연스럽게 개정되기 때문이다.

한인 여성인권·장학재단 효시

워싱턴에서는 여성 인권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주 여성인권 운동의 효시인 한미여성재단이 발족한 곳이 버지니아다. 한미여성재단은 지난 1963년 7월 국제결혼한 한인여성 6명이 창립했다. 당시 한미부인회로 발족했지만 1984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한 뒤 가정폭력 피해여성 돕기와 쉘터 운영, 한국과 미국의 혼혈 학생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82년 창립된 워싱턴여성회도 여성인권과 사회봉사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초기에는 회원자격을 국제결혼한 여성으로 국한했지만 이후 일반 한인여성들에게도 문호를 개방,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워싱턴여성회는 장학사업과 스미소니언 한국유산보존기금 모금운동 등 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1970년 이전에 미국에 유학온 학생들은 대부분 고학생이었다. 조지타운대와 조지워싱턴대, 아메리칸대 등이 유명대학이 몰려있는 워싱턴 지역에도 1950년대부터 한인유학생들이 유학왔다.

한인학생들을 돕기 위해 정성이 모여 발족한 단체가 한미장학재단. 1969년 2월 미국에서 한인 최초의 장학재단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1985년 LA에서 수부지역장학회, 1991년 애틀랜타에서 남부지역장학회, 1992년 시카고에서 중서부장학회에 이어 뉴욕의 동북부장학회 등 지역장학회를 조직, 전국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한미장학재단은 초기에는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지만 이후 동포 자녀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뿌리교육 한국학교 활성화

워싱턴 지역에서는 1970년 6월 주미대사관이 후원한 워싱턴 한글학교가 최초의 한글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1.5세대와 2세대에 대한 한글과 한국문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한인교회 등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국학교가 잇따라 설립됐다.

2014년 현재 50여개 한국학교가 한인학생뿐만 아니라 일부 타인종 학생도 가르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2003년 메릴랜드대 한국학 프로그램 살리기 운동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당시 주정부 예산삭감으로 한국학 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벌여 3만 달러를 대학측에 전달, 한국학을 살리기도 했다.

박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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