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 LA한인 자바 40년]자바가 살아야 한인들이 산다
70년대 말 샌티 앨리 지역 한인들 모여 들며 시작
유대인들이 팔다 남은 옷 가져다가 도매 형식 판매
최근 마약 돈세탁 수사 등 악재…탈출구 찾기 골몰
LA 한인사회를 논할 때 다운타운 자바시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자바시장 앞에는 늘 'LA 한인타운 경제의 젖줄', '한인 사회 경제의 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왔다. 그만큼 자바시장은 한인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요 몇 년 새 극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자바시장은 여전히 한인사회 경제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자바가 살아야 한인사회 경제도 산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중앙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봉제, 원단, 의류도매업(매뉴팩처) 등을 일컫는 자바시장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자바 형성 전 봉제공장
1960, 70년대 다운타운 봉제업체들은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피코와 5가, 힐과 메인 사이에는 봉제업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당시에는 미국 내 생산이 주를 이뤘고 단가도 몇십년이 지난 지금보다 높았다는 것이 봉제업계 관계짜들의 말이다.
그때 당시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한 한인 업주는 "기계 50대 정도 돌리면 한 달에 1~2만 달러를 벌었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 간단한 블라우스 하나에 70센트 받는다면 그때는 2~3달러였다"고 회상했다.
◇자바의 원조는 샌티 앨리
우리가 알고 있는 자바는 '자버(Jobber)'의 잘못된 발음이다. 자버는 과거 영국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을 일컫던 말이다. 미국에서는 일용직 일꾼(odd-jobber)이나 중간도매상(rack-jobber)의 의미로 쓰인다.
초창기 자바에 몸담았던 한인들은 자바를 제품을 직접 만드는 매뉴팩처와 제품을 소매에 파는 도매의 중간 단계라 설명한다. 다시 말해, 도매를 주로 하면서 때때로 제품도 만드는 것이다.
자바의 역사는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바 한인 원로들에 따르면 올림픽과 12가, 샌티와 메이플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매뉴팩처에서 팔다 남은 옷을 가져다 도매 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자바의 유래다. 당시 이 지역을 샌티 앨리라 불렀다.
1978년, 유대계 판인 샌티 앨리에 한인들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35년 자바시장에 몸을 담은 한 한인 업주는 "처음에는 3명 정도가 이 앨리에서 옷을 팔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로즈미드나 파라마운트의 스왑밋 그리고 텍사스주 엘파소 등 국경 스왑밋 등 업주들이 이곳에 와 옷을 구매해 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 고객들이 대거 샌티 앨리를 찾아 오면서 시장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
20년 전 11가와 샌페드로 인근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1100 S. San Pedro St.)가 들어서면서 자바시장에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자바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샌티 앨리 지역의 렌트비는 점점 비싸지고 유대계가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한인들이 샌페드로 길을 중심으로 새 활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의류도매업체들이 대거 생겨나 전성기를 달렸다.
현재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는 다운타운 자바시장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트에만 308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연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명 의류소매업체인 포에버 21도 이 마트에서 성공 기반을 닦았었다.
또, 이 마트 오픈 이후 한인 업주들끼리 힘을 모아 인근 지역 빌딩들을 매입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자바시장에만 한인 소유 빌딩이 20개가 넘는다.
한 자바시장 관계자는 "엄연히 말하면 이제는 자바라고 부르면 안 된다. 지금은 모두 옷을 만드는 매뉴팩처이기 때문"이라며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 오픈을 통해 자바시장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위기의 자바… 이겨내자
2014년 현재. 자바시장은 힘겹다.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고 여기저기 악재가 겹친다. 지난 10일에는 연방수사요원 1000여명이 투입된 자바시장 최대 규모의 급습이 이뤄졌다. 연방 수사당국은 20여 대형 한인 의류도매업체를 대상으로 한 멕시코 마약 조직 관련 돈세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인 의류협회 측은 "자바시장이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힌 뒤 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의류도매업체들은 끊임없는 가격 낮추기 경쟁에 진이 빠지고 원단업체들은 결제를 늦추거나 아예 결제 없이 문을 닫는 불량고객들과 무차별 디자인 도용 업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봉제업체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사람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분명 희망은 있다.
매뉴팩처 업체들은 시대 흐름에 맞춰 온라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2세들을 내세워 주류시장 공략에도 앞장서고 있다 샌페드로 패션마트 협회 돈 이 회장은 "20~30대 젊은 2세들의 자바시장 유입이 늘면서 주류 시장 진출 등 시장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체감경기는 나쁘지만, 2세들을 내세운 자바시장의 미래는 밝다"고 설명했다.
거래 업체 확대도 또 다른 묘안이다. 소규모 부티크 업체를 확보해야 한다. 한 업주는 "부티크 업체는 위험부담이 적다. 몇몇 업체가 수금이 되지 않아도 심각한 타격은 없다"며 "하지만,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봉제, 의류도매업에 이어 1980년대 가장 늦게 형성된 원단업계는 요즘 '뭉치면 산다'를 실천하고 있다. 업체들끼리 불량고객 정보를 공유해 블랙리스트를 제작한다. 30일 이상 결제를 미룬 업체, 60일 이상 결제를 미룬 업체, 바운스 체크를 발행한 업체, 소송중인 업체 등 항목도 다양하다.
이 리스트에 오른 업체들과는 최대한 거래를 자제한다. 원단 샘플 도용 방지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디자인 도용을 하는 업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봉제업체들은 매뉴팩처 업체들과 적정 단가를 책정하는 문화 정착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적정 단가를 맺게 되면 오버타임 미지급 및 최저임금 등의 노동법 위반 사례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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