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 미주 한인사회 40년]2000’s, 최악의 테러, 이민 100주년…조기유학 봇물
월드컵 4강 신화 한마음
조승희 총기 난사 '얼룩'
2001년 9월11일. 라디오에서 기자가 울부짖으며 외쳤다. “아, 건물이 무너집니다, 무너집니다.”
사상 최악의 동시다발적 테러였다. 뉴욕 현지 시간으로 오전 9시를 전후해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로 2대의 항공기가 충돌했다. 미국의 상징이 완전히 붕괴되는 처참한 광경을 전세계는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비명과 절규, 통곡이 생중계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알카에다 테러범 19명의 자폭행위로 한인 21명을 포함해 2977명이 숨지고 6500여명이 다쳤다. 경제적 피해는 직접적인 금액만 522억달러에 달했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50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1년 5월에 사살됐다.
그해 11월8일 한인사회는 성금 127만달러를 모금해 희생자 지원금으로 적십자사에 전달했다.
침울한 한인 사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건 이듬해 6월 ‘월드컵 4강 신화’였다. 새벽을 깨운 승전보가 계속됐다. 6월29일에는 한인 2만여 명 스테이플 센터에서 최초·최대 규모의 응원전을 벌였다.
2003년 1월13일 한인사회에 이정표가 세워졌다. 조선인 102명이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주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일당 69센트중 20센트를 독립운동에 지원했다. 13일엔 하와이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 퍼레이드가 열렸다. 보름전인 전년도 12월31일에는 LA윌셔그랜드호텔에서 리셉션이, 새해 첫날엔 로즈퍼레이드 꽃차 출전 등 각종 행사가 이어졌다.
이민의 이정표가 세워진 2000년대, 새로운 형태의 이주가 봇물을 이뤘다. 조기 유학이다. 한국 교육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조기 유학생은 2000년 4397명에서 매년 크게 늘어나 2006년에 2만951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기러기 가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조기 유학생들이 자리잡은 어바인, 풀러턴 등 오렌지카운티 주요도시들은 ‘남가주의 강남 학군’으로 불리며 급성장했다.
한인사회내 논란이 되어온 ‘떡’문제는 2001년 그레이 데이비스 가주 주지사가 상온보관과 판매 허용법안에 서명하면서 해결됐다.
2000년대는 개스비 폭등의 시대기도 하다. 본지 2002년 1월15일자 1면 사진에 게재된 타운내 주유소 개스비는 1.11달러였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3배가 넘는다. 개스비 부담으로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 보급이 확산됐다.
그외 사건으로는 2000년 7월7일 로비스트 린다 김이 한국에서 구속됐으며 그해 12월11일 뉴욕 WB11 TV가 한인 개고기 식용 왜곡 방송을 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07년 버지니아테크에서 한인 조승희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켜 32명이 목숨을 잃고 29명이 다쳤다.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한인이 일으켰다는 소식에 한인사회는 ‘2차 폭동’ 혹은 ‘혐오범죄’ 대상 가능성이 숨을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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