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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중앙일보와 한인사회 40년]"때론 친구,때론 심부름꾼--이민사회 정보창구로"

신문사 원로 선배들에게 듣는다

미주 중앙일보의 40년 역사는 곧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미국사회-한인사회-한국사회를 이어주는 브리지로서 중앙일보는 한인사회의 나침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창간 다음해인 1975년부터 30년 이상 일선 기자와 논설실장, 편집국장을 역임한 홍석인 전 국장과, 역시 80년대 초반부터 현재(논설고문)까지 같은 길을 걸어온 박용필 전 국장을 후배 기자(이경민·오수연 기자)들이 만났다. 한인사회 현장을 지켰던 원로 기자들의 말을 통해 중앙일보와 한인사회의 동반자 역사를 되새겨본다.

-과거의 중앙일보 기사는 지금과 많이 달랐나요. 주로 어떤 것들이었는지 들려주세요

홍: 당시엔 워낙 커뮤니티가 작다 보니 한인과 관련된 뉴스는 무엇이든 실었다. 한인 변호사가 탄생했다거나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됐다거나 하는 뉴스도 비중있게 다뤘다. 80~90년도에는 가슴 아픈 험악한 사건도 참 많았다. 장모를 야구 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 부유한 동네에 살던 아들이 누나가 일하러 나간 사이 부모님을 모두 살해한 사건 등 끔찍한 뉴스를 많이 다루게 되던 시절이었다. 리커 스토어 강도 사건이 한달에도 몇건씩 일어나곤 했다. 당시엔 커뮤니티와 신문이 워낙 밀착돼 있다 보니 중앙일보에 나간 강도 기사 때문에 매물로 내놓은 리커스토어가 안 팔린다며 편집국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업주도 있었다. 마사지팔러에서 일하던 아내를 쏜 살인미수범이 도주길에 신문사에 전화를 해 직접 제보를 한 적도 있다. 덕분에 기자가 검찰의 요청으로 직접 법정에 증인 출석을 하기도 했었다.

박: "80년대엔 한국 민주화 운동에 관한 기사도 많이 실었다. 당시 한국에선 사회 분위기상 보도가 자세히 되지 못했지만 오히려 미국에선 LA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할것 없이 그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했고 AP 등 뉴스 통신에서도 한국 민주화 투쟁의 처절한 현장을 담은 사진이 쏟아져 나왔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에 몸을 피하고 있으면서 테드 커플과 같은 유명 앵커들과 직접 인터뷰도 했었다. 그만큼 우리 신문에서도 쓸 수 있는 내용이 많았고, 한국에서보단 자유롭게 이에 관한 보도를 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해오면서 중앙일보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요.

홍: 오랜 세월 한인 커뮤니티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신문에 의지해왔다. '중앙일보에 이렇게 나왔다'는 게 모든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시켜주는 척도였을 정도다. 때문에 이민생활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오류없는 정보를 전해줘야 한다는 게 지난 세월 모든 중앙일보 기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한인 커뮤니티의 관심사도 바뀌어갔고 중앙일보 역시 그 흐름을 발빠르게 감지해 새로운 지면을 신설하며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해왔다. 자녀교육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교육 관련 기사의 비중을 늘렸고 커뮤니티의 경제력이 커지면서는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다룬 식이었다. 여가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는 레저나 문화, 공연에 대한 기사를 늘렸고 이민 1세대들의 고령화 트렌드에 맞게 건강 정보에도 신경을 써왔다.

박: 지난 40여년간 미주 중앙일보의 제일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한인들에게 '미국'에 대해 알려주는 창구로서의 기능이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국 뉴스는 '외신'이 아니라 '내신'이다. 그만큼 뉴스의 비중도 크단 뜻이다. 게다가 언어 장벽에 있는 한인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땅 혹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중앙일보의 미국 뉴스, 세계 뉴스 지면밖에는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오피니언 란의 '윌셔 플레이스'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윌셔 플레이스'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미국의 역사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아이들의 교과서를 보며 함께 공부를 했던 적도 있다. 칼럼을 통해 미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는 감사 인사를 받으면 그래서 더욱 뿌듯하고 보람됐다.



-중앙일보가 한인 커뮤니티를 대변하면서 주류사회에 위상을 높여온 측면도 있겠습니다.

홍: 주류사회에서 하는 다양한 캠페인에 앞장서며 한인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나갈 수 있는데 큰 몫을 해왔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예를 들어 미국 암 학회(American Cancer Society)가 CBS, NBC, ABC 등 주요 방송사와만 파트너십을 맺어 진행하던 암 예방 캠페인에 중앙일보가 합류해 캠페인의 메시지를 한인사회에 널리 알리고 코리아타운과 주류사회가 더욱 가까워질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힘썼던 적이 있다. 당시 미국 암 학회에서 중앙일보의 노고를 치하하며 소수계 언론기관을 대표해 표창까지 한 바 있다.

박: 해피빌리지의 전신인 미주한인봉사단(KAVC)을 창립하고 한인들을 봉사활동의 장으로 불러 모아 한층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운 것도 중앙일보의 뜻깊은 업적이다. LA폭동 10주년에 중앙일보가 앞장서 흑인 커뮤니티와 함께 사랑의 콘서트를 개최해 모든 주류 언론이 취재를 왔던 일이나 한인 2세들을 모아 저소득층 흑인,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찾아가 학생들을 무료로 과외지도 할 수 있게 주선했던 일 등도 기억에 남는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스테이플스 센터 응원전을 주도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파워를 주류사회에 알린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중앙일보의 역할에 대해 조언해달라.

홍: 중앙일보는 지난 40년간 한결같이 이민사회의 민원창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모든 한인들의 친구요, 심부름꾼이 돼야 할 것이다. 독자 전화 한통도 소홀히 받지 않고, 그들의 궁금증과 요구에도 늘 친절하게 정성껏 응대할 수 있는 중앙일보가 되길 바란다.

박: 중앙일보가 해 나가야할 앞으로의 40년의 역할은 지난 40년 동안의 역할과 똑같으리라 본다. 아무리 신문의 위기를 논하고, 한국어 신문을 보는 한인 사회 인구가 줄어든다고는 하나 신규 이민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중앙일보를 찾는 이들 또한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중앙일보는 그런 의미에서 이민자들을 위한 가이드가 되는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진행=오수연·정리=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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