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 뉴저지 한인사회 40년]저지시티, 70년 중반 '의료 이민' 확대… 한인 몰려
고려대·이화여대 출신 간호사 특히 많아
한인 마켓은 71년 '제일식품' 처음 오픈
2000년대 정치력 성장…현재 시의원 8명
1883년 9월 17일. 미국을 찾은 최초의 조선 사절단인 보빙사 일행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뉴저지 땅을 밟았다. 뉴욕 맨해튼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뉴저지주 저지시티로 향한 것. 당시 뉴욕시의 관문이었던 저지시티의 페리를 타기 위해 한복 차림의 11명이 저지시티의 센트럴 철도 종착역에서 내려 첫 발을 디뎠다.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종사관 서광범은 뉴저지 한인사의 시작점이 됐다. 1886년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에 입학하며 뉴저지주에 거주한 최초의 한인이 된 것.
서광범에서 시작된 뉴저지주의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70년대부터다.
◆70년대 초기 한인사회 중심 저지시티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뉴저지 한인사회의 중심은 저지시티였다. 1970년 중반 의료진 이민문호가 확대되면서 한인들이 저지시티로 대거 유입됐다. 대부분 저지시티 메디컬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그 가족들이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출신 간호사들이 특히 많았다.
1980년에 이르러 저지시티에 사는 한인은 800명으로 늘어났으며 저널스퀘어와 버겐애브뉴 인근에 몰려 살았다. 타 지역에 비해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저지시티는 뉴저지 한인사회의 시발점과 같은 곳이다. 1971년 버겐애브뉴에 최윤교씨가 운영하는 '제일식품'이 첫 문을 열었다. 뉴저지 최초 한인교회인 뉴저지제일한인교회(초대 담임목사 박재영)도 같은 해 설립됐다. 1975년 뉴저지한인회(초대회장 김상진)가 저지시티에서 출범했다.
뉴저지 최초의 한식당인 금학식당도 1981년 저지시티 웨스트사이드애브뉴에 문을 열었다.
◆80~90년대 북부 뉴저지 발전
1980년대에는 한국계 지상사 주재원들이 뉴욕 플러싱에서 북부 뉴저지로 이주하면서 한국계 대기업의 뉴저지 진출도 가속화됐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식당 등이 북부 뉴저지 포트리와 팰리세이즈파크(팰팍)에 자리잡았다. 특히 뉴저지 최대 한인 밀집지역으로 성장한 팰팍의 경우 1980년대 한미수퍼마켓이 한인 업소로는 처음 문을 열었고, 이후 한식당 금호, 그랜드가구점 등이 자리 잡았다. 본격적으로 한인 상권이 들어선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한인 상권 발달은 1990년대 들어 교육환경이 우수한 북부 뉴저지 버겐카운티로 한인들의 이주가 본격화된 것과 맞물려 있다. 포트리와 팰팍을 시작으로 테너플라이•잉글우드클립스•클로스터 등지로 유입되는 한인이 급속히 늘었으며 일부는 중부 뉴저지 에디슨 지역으로 이주했다. 에디슨 지역은 럿거스대와 연구소 등이 있어 유학생 커뮤니티가 일찍부터 자리잡았다.
또 한국계 대기업의 뉴저지 진출이 늘면서 주재원들의 뉴저지 이주도 증가했다. 90년대 들어서자 미주법인들 사이에 사옥과 사택 구입 열기가 몰아치기도 했다.
1970년대 뉴저지 거주 한인은 1만 명 정도였다. 지금처럼 북부 지역에 밀집해 있지 않고 저지시티와 뉴브런스윅, 남부 뉴저지 체리힐•트렌턴 등 뉴저지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2010년 센서스에 따르면 뉴저지주의 한인 인구는 10만334명으로 집계 됐다. 30년 사이에 10배 증가한 셈이다.
1990년 센서스에서 한인은 뉴저지주 전체 인구의 0.5%를 차지했지만 2010년 1.1%로 늘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북부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전체 인구 가운데 한인은 1990년 1.9%에서 6.3%로 최다 소수 민족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이후 한인 정치력 신장
한인 인구 팽창과 함께 2000년대부터 한인 정치력이 크게 신장됐다. 2004년 팰리세이즈파크 시의원에 당선, 미 동부지역 최초의 한인 시의원으로 기록된 제이슨 김 팰팍 부시장을 시작으로 이달 11일 포트리 시의원에 임명된 피터 서 의원까지 현재 뉴저지주의 한인 시의원은 총 8명으로 늘었다. 각 지역의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교육위원에도 팰팍•포트리•에지워터 등지에서 총 13명의 한인이 활동하고 있다.
또 뉴저지주에서는 2005년 최준희씨가 에디슨 시장에 당선되면서 하와이를 제외한 미 본토에서 최초로 직선제 한인 시장을 배출한 지역이 됐다. 최 전 시장은 2009년 재선에는 아쉽게 실패했으며, 현재는 연방하원의원 출마를 고려 중인 상태다.
2013년에는 뉴저지 한인사회의 시작이자 뉴저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저지시티에서 윤여태씨가 시의원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다. 윤 의원이 당선된 D선거구는 총 2만 여명의 유권자 가운데 한인은 단 6명에 불과, '0.03%의 기적'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1년 저지시티에 정착한 그는 허드슨실업인협회장, 저지시티 발전위원회 이사장, 저지시티 부시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당선의 요인이 됐다.
올 본선거에는 33세의 젊은 한인 2세 로이 조가 미 동부 최초이자 한인으로는 두 번째 연방하원의원 당선에 도전한다. 민주당 후보로 뉴저지 5선거구에 출마한 로이 조는 6선 관록의 스콧 가렛(공화) 현 의원과 맞붙여 힘겨운 싸움이 예상되지만, 역사상 5선거구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는 가장 많은 80만 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확보하는 등 만만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한인들의 후원도 기적을 연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정치력 신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슈 등 한인사회 주요 현안을 정치권에 강하게 요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2010년 전세계 최초로 팰팍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버겐카운티 법원 앞, 올해는 유니온시티에 기림비가 잇따라 건립됐다. 또 2013년 뉴저지주 상•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뉴저지주는 인권 보호의 차원의 위안부 문제 알리기가 미 전역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꼽힌다.
서한서 기자
hse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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