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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 - 시애틀 한인사회 40년]검사부터 상원의원까지…한인사회 정치력 신장 텃밭

마사 최 시작으로 한인정치인 잇따라 탄생
이젠 1세 시대 끝나고 1.5세와 2세 약진
주의원 1명, 판사 3명, 부시장, 경찰국장까지

워싱턴주 한인사회의 가장 큰 자랑은 한인 정치인들이 미주의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배출 되었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의 도화선은 2세 마사 최(Marth Choe)부터다.
마사는 연세대학교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최계순씨와 정영자씨의 1남1녀 중 막내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UW에서 인종학을 전공한 후 시애틀대학에서 MBA를 받았고 오리건 유진에 있는 고교에서 4년여 동안 영어와 웅변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후 캘리포니아 은행에서 11년 간 근무하면서 부사장까지 승진했는데 시애틀 아시안 사회와 미 주류사회에서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991년 11월 시의원에 첫 출마, 미국 한인 이민사상 최초로 대도시 시의원이 됐다.

99년에는 워싱턴주 경제개발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마사는 2004년부터 시애틀에 본부가 있는 '빌& 메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글로벌 도서관' 프로그램 디렉터에 이어 수석행정관(CAO)으로 10년동안 근무하다 지난 8월로 은퇴했다.

마사의 영향으로 서북미 한인사회는 한인 1세인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 임용근 오리건주 상원의원, 박영민 페더럴웨이 시의원 그리고 1.5세인 이승영 쇼어라인 시의원, 장태수 쇼어라인 시의원. 신디류 쇼어라인 시의원이 잇달아 탄생하는 등 한인사회 정치력이 미국 그 어느 곳보다 급신장 되었다.

이중에서도 임용근 오리건주 상원의원과 함께 상,하원 5선 최장 공동기록을 가지고 있는 신호범(79)박사는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1998년 상원으로 선출된 후 상원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성공적인 정치생활을 해왔다. 특히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1세 정치인으로서 미주 한인들 뿐만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1935년 경기도 파주시 금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으나 6살때 가출, 그때부터 서울역 앞에서 거지소년으로 방황하는 상상할 수 없는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미군 하우스보이가 되었는데 미군 장교에게 입양되어 18세에 미국으로 왔다. 독학으로 피나는 공부를 한 끝에 UW에서 동양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메릴랜드대학, 하와이대학과 쇼어라인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31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 97년 은퇴하였다.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출마 당선되었다.

박영민씨는 이민 1세로서 페더럴웨이시 첫 한인 시의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첫 한인시장까지 역임했다. 1.5세 이승영(Cheryl Lee)씨는 1995년에 27세의 젊은 나이에 쇼어라인시 초대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최연소 아시안계 정치인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9세 때 가족과 함께 이민 온 후 쇼어라인에서 고교를 나왔고 UW에서 기계 공학 전공, MBA 석사를 했으며 보잉에서 시니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승영 시의원이 2001년 3선에 재출마를 하지 않아 포지션 1번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에 1.5세인 장태수씨가 출마, 당선되어 시애틀 한인타운인 쇼어라인시에 두번째 한인시의원이 탄생되었다.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인 71년에 시애틀로 이민온 그는 UW에서 경영학과 국제무역을 전공했다. 그러나 재선에 실패한 후에는 정계를 떠나 현재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장태수 쇼어라인 시의원이 재선에 실패했을 때 같은 쇼어라인시에서 1.5세인 신디류씨가 당선되었다. 2년 전 첫 출마에 실패했던 신디류는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 끝내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한국말도 유창한 그녀는 1980년 UW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으며 83년에 UW에서 MBA 학위를 취득하고 남편과 함께 보험업을 했다.

특히 신디류의원은 2008년 쇼어라인 시에서 워싱턴주 최초의 한인 여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9년 재선에서 실패하자 2010년에는 워싱턴주 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녀는 올해 3선에 출마했는데 도전자가 없어 이미 당선이 확정된 상태이다.
이처럼 워싱턴주 한인사회에서는 지난 20여년동안 여러 한인 정치인들이 배출되었으나 이제는 올해 신호범 상원의원마저 은퇴하는 바람에 신디류 하원의원만이 유일한 정치인으로 남았다.

이처럼 이제 이민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워싱턴주 한인사회에도 1세 정치인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젠 1.5세 시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이젠 정치인 대신 1.5세 와 2세 한인들이 각계각층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중에서도 판사 3명, 첫 한인 경찰국장, 시애틀 부시장 등 각계각층에서 고위직으로 활동하고 있어 자랑을 주고 있다.
첫 한인 여성판사인 마리앤 스피어맨(지명희) 판사는 1984년 UW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변호사로서 활약하다 1994년 판사로 지명되었고 그후 선거에 당선되어 지금까지 연임하고 있다. 남편 마이클 스피어맨씨도 워싱턴주 항소법원 판사이기 때문에 판사부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어 지난 2013년 12월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지사가 한인 2세인 존 전(John H. Chun, 전형승 )변호사를 킹 카운티 수피리어 코트 판사에 임명, 두번째 한인 판사가 배출되었다. 그는 1960년 포트랜드로 이민 온 전홍국(전 오리건 한인회장)씨의 아들이다. 3번째로 시애틀의 정상기(Sam Chung) 변호사가 지난 5월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지사에 의해 킹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올해에는 미국 본토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한인 경찰국장이 페더럴웨이에서 탄생했다. 주인공은 페더럴웨이 경찰국 앤디 황(48)으로 150여명의 경관들을 지휘해 인구 9만여명인 페더럴웨이의 치안을 맡게 되었다.

특히 올해에는 1.5세 여성인 김혜옥씨가 시애틀 부시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자문위원에 임명되었던 그녀는 지난해 당선된 에드 머레이 시애틀 시장이 두명의 부시장중 한명으로 임명했다.


워싱턴주 최초 한인은
1898년 골드러시 때 시애틀에 홍지인씨 첫 발


워싱턴주에 최초로 한국인이 들어온 것은 언제였을까?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1890년대 말부터 1898년 서북미에 온 첫 한인으로는 홍지인씨로 알려져 있다. 홍씨는 1903-1905년 구 한국에서 7226명의 노동 이민이 정식으로 하와이에 이주하기 5,6년 전인 1898년에 이미 시애틀 항을 통해 미국에 온 후 당시의 골드러시로 알래스카에 갔다.

그곳 스카지웨이에서 금광을 탐색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짐을 등에 지고 운반해주는 힘든 노동을 2년 동안 하다가 케치칸으로 가서 자영사업을 시작,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을에서 부유층에 속할 정도로 자수성가를 했다.

또 1890년말-1900년대 초 한인 인삼장사들이 이곳과 알래스카 등을 거쳐 간 흔적이 있고 그 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들 중 미대륙으로 와서 알라스카의 금광 및 수산, 통조림공장 등을 떠돌아다니며 일했던 한인들의 일부가 시애틀을 기지로 하여 산 흔적도 있다.

시애틀=이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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