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 한인은행 40년]한인사회 급성장 가능케한 든든한 견인차
본점 수 '제로(0)'에서 20개, 9월 현재 총 자산고 225억여 달러.전국 각지의 한인은행들이 지난 40년 동안 이룬 눈부신 성취다.
지금이야 한인은행이 워낙 많아져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민 초기 한인 사업주들에게 한인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타인종 은행의 높은 문턱에 좌절을 맛봐야 했던 당시 한인들에게 한인은행의 존재는 비즈니스를 여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금 확보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한인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한인은행들의 발전사를 가주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한국계·한인은행 설립
1974년 9월 19일 LA 윌셔가에 가주외환은행(California Korea Exchange Bank)이 문을 열었다. 가주는 물론 미국 최초의 한국계 은행이 설립되는 순간이었다.
가주외환은행은 한국 외환은행이 단독출자해 세웠다. 초기 자본금은 300만 달러였다. 한국 외환은행 전무를 지낸 고 정원훈씨가 초대 행장을 맡았다. 가주외환은행은 2년 후 500만 달러 증자를 하면서 명칭을 CKB(California Korea Bank)로 바꿨다.
CKB는 이후 퍼시픽유니온뱅크(PUB)로 개명했으며, 창립 30주년을 맞은 2004년 한미은행에 합병됐다.
1980년 12월엔 유대계와 한인 자본으로 설립된 윌셔스테이트 은행(현 윌셔은행)이 문을 연다. 타인종 이사 11명과 한인 4명이 400만 달러의 자본금을 모아 설립한 이 은행은 토착 한인자본이 투입돼 설립된 최초의 한인은행이다.
2년 뒤인 1982년 12월, 한미은행이 3737 올림픽 불러바드에서 영업을 개시한다. 순수 토착 한인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한인은행이 문을 연 것이다.
가주 한인은행의 역사는 곧 한인경제 발전사이기도 하다. 당시는 올림픽가를 따라 한인업소가 늘어나면서 LA한인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 확보다. 어깨가 축 처진 채 타인종 은행의 문을 나섰던 당시 한인들에게 한인은행은 복음 그 자체였다.
◆성장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가주에선 한인은행 설립이 잇따랐다. 주무대는 역시 LA였다.
중앙은행이 1986년에 설립됐고 3년 뒤인 1989년엔 나라은행이, 1991년엔 새한은행이 각각 문을 열었다.
한인은행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한인타운 경제규모의 확장이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98년 1월 29일, 한인은행권엔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나라은행이 나스닥 시장에 한인은행으로선 처음으로 상장된 것이다. 같은 해, 윌셔은행이 나라의 뒤를 이어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어 2001년 1월 한미, 2002년 10월 중앙은행이 역시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4개 은행은 '빅4'를 형성하며 한인은행권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당시 형성된 '빅4'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윌셔, 한미와 함께 '빅3' 상장은행에 속하는 BBCN이 2011년 나라와 중앙의 합병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 한인은행가엔 활력이 넘쳤다. 새로운 은행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2001년엔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에 유니티 은행이 설립됐다. 이듬해인 2002년엔 미래은행이 LA에 등장했다. 2003년엔 태평양은행이 탄생했다.
2년 뒤인 2005년엔 문자 그대로 한인은행 탄생 러시가 일었다. 3월에 커먼웰스비즈니스뱅크(현 cbb뱅크), 6월엔 퍼스트스탠다드뱅크(First Standard Bank, FS제일은행)가 각각 문을 연 것이다. 이 은행은 2010년에 오픈뱅크로 이름을 바꿨다. 한달 뒤인 7월엔 한인 투자자들이 오클랜드의 '뱅크오브오클랜드'를 인수, '아이비은행'으로 개명했다.
2006년엔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에 US메트로뱅크가 들어섰다.
2009년에 가주에 본점을 둔 한인은행의 수는 한미, 나라, 윌셔, 중앙, 새한, 태평양, 미래, 커먼웰스비즈니스, 아이비, 유니티, FS제일, US메트로 등 12개에 달하게 됐다.
◆시련기
성장일로를 달리던 한인은행가는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된다.
경제위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부동산 버블붕괴로 인한 대출 부실화, 무리한 성장 드라이브에 취해 기준도 무시한 채 내줬던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탓에 많은 은행들이 위기를 맞았다.
다수의 은행들은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를 받고 연방정부 지원금(TARP)에 의존해 위기 타개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 와중에 폐쇄되는 은행도 생겼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009년 6월 26일 부실경영을 이유로 미래은행 본점과 4개 지점을 폐쇄했다. 한인은행으로서는 최초로 폐쇄 조치를 당한 것이다. 미래은행은 윌셔로 매각됐다. FDIC는 2010년엔 아이비 은행에 폐쇄조치를 내렸다. 두 은행 주주들은 보유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재도약기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한인은행들은 재도약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나라와 중앙의 합병으로 BBCN이 탄생했다. 새한은 윌셔와 합쳤다. FS제일은행은 이미지를 쇄신하고 좀 더 친숙한 이름을 갖기 위해 오픈뱅크로 개명했다.
현재 한인은행들은 강화된 대출 기준 등 관련 규정을 충실히 따르면서 SBA론을 포함한 대출 확대와 인수·합병 등을 통해 다시금 성장가도를 걷고 있다.
2008년 27개에 달했던 전국 한인은행의 수는 올해 9월 현재 20개로 감소했다. 하지만 6년 전에 비해 한인은행들의 내실이 다져진 것은 확실하다. '빅3 은행'이 인수·합병을 통해 자산 규모를 크게 늘려 커뮤니티 뱅크를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영업하는 은행으로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한 것도 큰 수확이다.
9월 현재 미국 내 한인은행으로는 가주의 BBCN·한미·윌셔·태평양·cbb·오픈·유니티·US메트로, 뉴욕·뉴저지 일대의 우리아메리카·신한아메리카·BNB하나·뉴뱅크·뉴밀레니엄뱅크·노아(Royal Asian), 모아은행(행장 폴 현)을 한인 디비전으로 운영하고 있는 뱅크오브프린스턴, 시애틀의 유니, 애틀랜타의 제일·메트로시티·노아(Noa), 하와이의 오하나 등이 있다.
임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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