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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특별기획] 1343일만에 무죄 석방 고형석씨 사건

한인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했다고…

2000년대 들어 중서부 한인사회 내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을 꼽으라면 지난 2009년 노스브룩에서 발생한 20대 한인 고 모씨 사망 사건일 것이다. 숨진 아들의 아버지가 살인범으로 몰려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했으나 결국 무죄로 풀려난 사건이 중앙일보를 통해 생생하게 보도됐다. 이 사건은 이민자로 살아가던 한인 가장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점에서 한인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모든 재판과정에 빠지지 않고 직접 참여해 검찰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모두 들은 본지가 사건 이후를 다시 살펴본다. 또 자유의 몸이 된 고형석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알아본다.

“신학공부하며 지냅니다”
출소 2년 앞둔 고형석 씨

고형석(62) 씨는 요즘 신학공부를 하고 있다. 신학공부를 통해서 목사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학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약 2년 전부터 중부신학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고 씨는 무죄로 석방된 후 교회를 다니며 신앙간증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무죄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호인단은 독실한 크리스천들이었기 때문에 고 씨의 신학 공부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고 씨는 1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 12월에 무죄로 석방됐으니까 이제 2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된 고 씨가 재판을 받을 당시 가족들과 출석하던 뉴라이프장로교회 교인들은 물론 전혀 연고도 없는 한인들은 법정을 찾아 후원을 했다. 또 변호사들은 무료로 변론을 맡았고 출소 이후에는 고 씨 가족의 휴가 비용을 부담하는 선행을 보이기도 했다.
고 씨는 부인이 서버브의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고 함께 살고 있는 딸은 최근 새로운 학군에서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딸은 사건을 겪으며 살고 있던 집을 처분했고 일하는 학교도 옮기는 등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본지 본재판 전일정 보도
아직도 민사 소중 진행중

형사소송은 끝났지만 노스브룩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결론이 언제 날 지도 모르는 소송이다.
고 씨에 따르면 급할 것이 없는 경찰쪽에서 소송을 계속 늦추고 있다고 한다.
고 씨는 “당시 많은 한인들의 성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견딜 수 있었다. 신학공부를 계속하면서 사회에 갚을 길이 없는지 생각하고 있다”며 “남은 인생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고형석 씨 사건 일지
아들 살해 혐의로 구속됐다 1343일만에 풀려난 고형석씨는 결국 무죄 평결로 석방됐지만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감내해야만 했다. 당시 사건을 시간순서대로 정리했다.

▶2009년 4월 16일 새벽=노스브룩 한 주택에서 폴 고(당시 22세)씨가 다수의 자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폴 고의 아버지 고형석 씨가 살인 용의자로 기소, 체포됐다. 이튿날 고 씨에게는 500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됐고 고 씨는 쿡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후 2010년 12월까지 기소 기각 및 무혐의 석방을 위한 예비심리가 열렸다. 담당 판사 개릿 하워드, 고 씨 변호는 엘리엣 징거 변호사가 맡았다. 한인사회는 ‘고형석 무죄석방 운동본부’를 조직했고 중앙일보는 2010년 4월 위아자 나눔장터를 통해 조성된 수익금을 고 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2011년 1월부터 1년간 재심리가 진행됐다. 제너&블록 기독교 변호사협회 변호사 9명이 파송되고, ‘고형석 대책협의회’가 조직됐다.

▶2012년 1월 21일 변호인단의 주장이 기각된 후 본재판이 확정됐고 이후 11월 16일까지 매달 본재판을 위한 준비심리가 열렸다.

▶11월 28일 15명의 배심원(예비배심원 3명 포함) 선정과 함께 29일 본재판이 시작됐다. 12월 17일 총 13일의 본재판 일정이 끝나고 배심원단은 무죄를 평결했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18일 오전 1시 반 고 씨는 교도소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됐다.



억울한 옥살이 한인 한인 또 있다
방화혐의 무기수 배모 씨 대표적

고형석 씨와 같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경우는 미국의 사법체계와 법률관계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고 씨의 경우에도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고 타 경찰서에서 수사에 참여한 한인경찰로부터 제대로 된 통역을 받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 수사와 기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 남편을 총으로 쏴서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홍인숙 씨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지울 수 없는 범죄자가 된 경우다. 홍 씨는 고 씨와는 달리 범죄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사전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했거나 보호시설의 도움을 받았으면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게 홍 씨의 생각이다.

지난 2002년 백인 남편을 살해해 징역 4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한인 권 모씨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 남편의 이혼요구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방화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한인 배 모(64)씨의 경우도 한인사회 큰 이슈가 됐었다. 29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인 배 씨는 지난 1985년 2월 자신이 다른 2명의 한인과 운영하던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의 방화범으로 몰렸다. 시카고의 밀워키길에 위치했던 이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화재진압을 하던 소방관 3명이 무너진 천장에 깔리면서 사망했다.

보험금을 노린 방화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됐고 배 씨는 1심에서 선고된 25년형이 2심에서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으로 오히려 무거워졌다. 이는 다른 2명의 한인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변호사 선임절차를 거치지 않아 가석방으로 풀려난 반면 영어에 익숙한 배 씨에게만 징역형이 선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씨는 제대로 된 변호 기회도 갖질 못했고 다른 2명의 한인 역시 사라져 억울한 옥살이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2009년 12월 시카고 포스터길에 위치한 환전상을 운영하다 숨진 최 모씨의 경우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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