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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장대 끝에서 한걸음을 더

"들리지 않는가. 죽고자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라고 우렁차게 외치는 그 소리가, 300척 같은 1척의 속으로 돌격하는 늙은 삼도수군통제사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그의 팔에서 불리워지는 아름다운 칼의 노래가"(김훈의 '칼의 노래' 중)

명량해전(1597년 10월)을 앞두고 조선 수군은 왜적의 엄청난 군세에 질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들 앞에 토해낸 이순신 제독의 비장한 이 한마디,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전율스런 언표는 전장에 국한된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삶 속에서 절체절명의 선택적 갈림길에 처하거나, 수행자가 종교적 궁극을 향한 수행과정에서 직면한 한계의 극복을 위해, 던져야할 최후의 필살기가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뜻으로 "크게 한번 죽어야 다시 산다"는 매몰차고 서슬 퍼런 선어가 있다. 그것의 은유적 표현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시구이다.

이 선어에 얽힌 통쾌한 고사가 있다. 소설가 고 최인호의 작품인 '상도'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그 개략적인 일화이다.

조선시대 거상으로 알려진 임상옥이 조선 인삼을 팔기 위해 중국에 가게 된다. 그러나 그곳 중국 상인들이 담합하여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하자 임상옥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마침 함께 간 추사 김정희가 그 딱한 사정을 알고 건네준 글귀가 바로 '백척간두진일보'였다고 한다. 여기서 크게 깨달은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 앞에 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댕긴다. 이 예기치 못한 광경에 혼비백산한 중국 상인들은 백배 사과하게 되고 오히려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삼을 매입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고 원용된 이 시구는 중국 당나라 때 장사경잠 선사가 읊은 선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백 척 되는 장대 끝에 앉은 사람/ 비록 얻은 바 있다 해도 참 소식은 아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우주의 참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리라"

선가에서는 죽자고 올라야 오를 수 있는 백 척 장대의 끝자리,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향상의 극치인 깨달음의 자리, 그 꽃자리에 오른 이를 성자라 칭한다. 그러나 그 경지는 끝이 아니다. 장대에 의지해 머무는 한 그 깨달음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장대 끝에서 광활한 우주 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장렬한 산화, 그로서 완전한 해방이며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면서 절로 드러나는 대자비심, 그것을 동체대비라 한다. 깨달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그 시작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완성인 무한자비의 발현이다. 그러므로 무릇, 불교의 궁극은 "그것(진리)을 알고 그것을 사는 것(자비)"이라 하겠다.

박재욱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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