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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자 세명, 이혼한 여고동창 ‘씹는’말 들어보니

헤어진 것을 후회하면서 불분명한 처신을 하기 때문에 사별과 달리 이혼을 보는 시선이 편견과 미욱함으로 고정되는지도 모릅니다.

“이혼은 사별하곤 엄연히 다르지. 일단 이혼했다면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거잖아.”

시내의 한 패스트푸드점. 40대 초반의 여자 셋이서 최근 이혼한 여고 동창 하나를 ‘씹는’ 중인가 봅니다. 그네들의 대화 중에 ‘사별은 착한 것, 이혼은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이 자연스럽게 성립합니다. 죽음은 많은 것을 용서하고, 과거의 기억은 미화하기 마련인 인간 심리를 감안한다 해도 한쪽의 죽음으로 종결된 부부 관계는 아무 흠결도 없고, 이혼으로 인한 갈라섬은 상처와 원망으로 얼룩진 실패한 결혼이며 당사자는 모두 패배자라는 결론이 좀 씁쓸합니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은 어떤 부부에게나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혼할 때 흔히 말하는 유책 사유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나긴 결혼 생활을 통해 쌓이고 쌓여온 것이라는 게 그 방증입니다. 그럼에도 이혼하는 부부들은 무조건 원수, 그것도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갈라서게 된다는 시선이나 편견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나는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인데다 하늘 아래 철천지원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주홍 글씨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 이혼의 불편한 진실이라면 애초 나 자신도 이혼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같은 낙인을 피하기 위해 ‘내 이혼은 너희들 이혼하고는 다르다, 특별하다’는 식의 유아적 자기애로 무장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별한 이들이 그 엄연한 현실을 돌이킬 수 없듯이, 이혼한 사람들도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직시하기 위해 같은 각오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살았던 호주에서는 이혼 숙려 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혼 결심이 확고한 상태에서 1년이란 기간을 유예시킨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일생일대의 결정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사려 깊은 제도적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숙려 기간이 1년이나 되니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 중에 심사숙고를 통해서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라는 상실의 5단계를 두루 거치게 되는 것이지요. 다섯 단계의 감정 파고를 모두 거친후에 결정을 내린다면 사별이 어쩔 수 없는 일이듯, 이혼도 어쩔 수 없고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막상 제 자신이 겪고 보니 주위에 이혼한 사람도 많고, 이혼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드러내고 자랑할 것까지야 없다 해도 숨길 일은 아니건만 당사자조차 쉬쉬하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소신이나 자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본 여자들 말마따나 전반적으로 ‘이혼은 죄’ 내지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단언컨대 이혼이 문제라면 애초 결혼이 문제였을 것입니다.

이혼이 나쁜 게 아니라 결혼이 나빴습니다. 물이 100도에서 끓지만 서서히 뜨거워져서 비등점에 이르듯이, 마지막 한 점의 눈송이가 급기야 가지를 부러뜨리듯이 결혼 생활 중에 누적된 문제가 결국은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이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이혼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혼 후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 중에는 충동적으로,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친구 따라 강남 가고,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하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이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고, 당사자조차 이혼 사실을 숨기는 일이 그렇게 많을 리가 있겠습니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한 후 자기 확신이 들 때 이혼해야 맞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내린 결정이라면 흔들림이 적고 회한의 크기도 그만큼 작습니다. 완벽한 결정, 완전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확신
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아연은…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blog.naver.com/shinayoun).
여성중앙 연재 칼럼을 통해서 ‘이혼의 강’ 앞에 선 이들 누구나가 경험하는 감정의 파고, 사고의 혼란을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신 또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처지에서, 이혼의 실체를 직면하고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기획=조영재 기자, 글=신아연(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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