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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흙이 생명을 만나면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나무를 심으려고 흙을 파 들추었습니다. 거무죽죽한 흙이 갑자기 만난 빛 아래서 몸을 감추느라 야단입니다.

말라버린 진흙도 있고, 잘 부서지는 모래흙도 있지만 그래도 흙일 뿐입니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멀리 돌리면 우리는 흙이 채우고 뻗어나간 대지를 만납니다. 지구 대부분이 물로 덮여 있지만 물을 담고 있는 그릇도 흙입니다. 물살을 따라 몸을 바꾸고 빛을 따라 얼굴을 고치며, 아이들이 올라 노는 명랑한 언덕이 되기도 하고 장엄한 계곡이나 끝이 없어 보이는 산들 속에 산들을 이루어 우리를 놀라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손에 산을 담으면 불그스레하고 검푸르기도 한 흙입니다.

그러나 흙은 흙 색만이 아닙니다. 바람을 가지에 품은 나무는 짙은 녹색 향기를 뿜어냅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총천연색 꽃들로 하늘을 덮기도 하고, 때를 따라 가지마다 달리는 실과들로 우리를 먹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는 어김없이 흙이 있습니다. 검은 흙에서 녹색이 나오고, 형형 색색의 꽃이 피고, 달콤새콤한 열매가 나오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단지 흙에 생명이 담기자 그렇게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흙들이 서로 뭉치기만 해도 장엄하고 놀라운 장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보며 흙덩어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흙덩어리가 맞습니다. 그래서 비록 위대해 보이는 경관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흙이 생명을 만나는 순간은 높디높은 로키산맥보다 더 경이로울 수 있습니다.

땅에 붙어 어여쁜 원색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꽃들, 당연한 듯 지나쳐버리는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 사과를 온몸에 단 나무들 모두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만나자 흙도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참 대단한 경이로움입니다. 우리끼리 뭉쳐 나라를 이루고, 편한 세상을 만들고 달나라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욕심으로 귀한 생명을 너무나 쉽게 사라지게도 합니다. 미움으로 밤을 새우고, 분노로 자신을 태우기도 합니다. 누구도 우리 자신을 이기심과 분노 덩어리라고 부르기를 어려워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존심과 이기심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분노와 이기심이 참 생명을 만나고, 자신을 찾지 못하던 방황과 외로움에 생명이 담기자 그곳에 사랑이라는 영롱한 색의 꽃이 피고, 인내와 온유라는 새콤한 열매가 맺힙니다.

생명이 이기심 덩어리를 사랑 덩어리로 만듭니다. 이 생명은 놀랍게도 우리의 이기심과 죄 속에 떨어져 썩으셨고,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죽음도 고개를 숙입니다.

매일 이기심과 경쟁에 지치고 힘든 발자국들은 땅을 더 단단하게 더 고집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닮으면 그렇게 쏟아놓아 버린 인생들이 가지에 담겨 그늘을 만들고 꽃에 스며들어 미소를 띠고 열매에 담겨 당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inhimiconsig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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