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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소개팅…서른 안팎의 교무·전도사·스님·신부…그들이 버린 것과 얻은 것, 그리고 피끓는 젊음의 이야기

세상의 성공 공식에서 이탈한 청춘 남녀 4명을 만났습니다.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새내기' 성직자들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는 청춘은 유난히 반짝였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이들은 같은 물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무한 경쟁에 지쳐가는 청춘이라면 누구라도 되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참된 삶의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먼저 간단한 프로필부터…

①여자 1호: 28세 김효인. 컴퓨터를 전공하는 여대생이었다. 연애 경험도 당연히 있다. 취업도 됐지만 더 깊고 풍성한 삶을 살고자 포기했다. 지금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는 원불교 성직자(교무)로 살고있다.

②남자 1호: 30세 배동영.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부산 사나이. 무작정 상경해 밴드 생활도 했다. 어느 순간 기타를 내려놓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경기 용인시 향상교회 전도사다.

③여자 2호: 33세 이지희.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경찰이 되려고 했다. 대학 때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마주쳤다. 출가를 결심하고 비구니가 됐다. 속세 이름인 '이지희' 대신 '월서(月瑞)'라는 법명을 얻었다.



④남자 2호: 29세 김성수. 태어나면서부터 천주교 신자였다. 자연스레 신학교에 입학했고 올 2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고덕동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섬기고 있다. 세례명은 마르코.

-무슨 이유로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죠?

김효인 교무="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해봤어요. 치열한 경쟁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내 존재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죠. 참된 행복과 보람을 찾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어요."

배동영 전도사="대학에 진학해 물리학 교사가 되려고 했는데 도무지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취직 준비한다고 서울로 올라와 몰래 밴드 활동을 했죠. 그런데 어느날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가슴을 때렸어요. 집 나간 탕자가 꼭 내 모습 같았죠. '육신의 아버지께도 순종하지 못하는데 어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이듬해 곧장 신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어느날 문득 내 삶의 설명서가 궁금했어요

월서 스님="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진학했는데 허무했어요. 목표가 없어지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대학 수련회에서 대해 스님(조계종 국제선원장)을 만났어요. '컴퓨터를 잘 다루려면 설명서를 알아야 하듯 사람도 잘 살아가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순간 멍해졌어요. 세상이 강요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나의 설명서에 맞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말하는 멋진 스펙을 갖췄다고 해서 훌륭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사라질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찾고 싶어 출가했어요."

김성수 신부="어릴 때부터 신학교에 가란 얘기를 자주 들었고 거부감도 없었어요. 그러다 고2 때, 예비신학생 모임에서 신부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죠. 청년들에게 늘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고 얘기하는 데, 그때 내 심장도 뛰었다고 할까. 사제가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멋진 남자보다 추구하는 가치에 가슴 뛰어

-사랑하고 싶은 청춘의 자연스런 욕망은 어찌 다스리시는지.

김 교무="이성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은 인간의 이치에 맞는 자연스런 감정이죠.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런 이치를 역행하는 게 우리 성직자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과 이상향에 대한 갈구가 그런 감정에 대한 욕망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절제가 가능합니다. 멋진 남자보다는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심장이 더 열심히 뛴다고 할까요."

김 신부="사실 결혼과 독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예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 그 자체죠. 부부는 서로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 관계잖아요. 성직자도 절대자와 신자들을 향해서 온전히 자신을 비워놓고 내어놓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아요. 가톨릭에서는 부부간 성관계에서도 절제를 중요시 하거든요. 피임한다는 얘기는 내 쾌락을 위해 아이를 갖는 책임을 배제하는 것이므로 가임기에는 성관계를 절제해야 한다고 가르쳐요. 부부 관계에 절제가 필요한 것처럼 성직자도 마찬가지죠. 성직자로서 신자에게 지켜야할 윤리와 책임도 있는 것이고요. 사실 우리 같은 성직자도 절제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참는 거라고 할까요."

-청춘 세대의 개방적인 성의식은 어떻게 보세요.

김 교무="쾌락이나 색욕에 빠지면 즐겁고 편하죠. 하지만 원불교에선 그것을 한순간 날아가는 욕심이라고 봅니다. 요즘 제 또래 청년들은 목적지향의식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만족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도 시들하죠. 진정한 삶의 본질과 행복을 찾아가는 마음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배 전도사="속수무책인 상황이죠.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책임 의식을 가지라고만 하기엔 사회·문화적으로 너무 많은 성적 자극이 있으니까요. 교회가 어떤 해답을 줘야할지 고민이 큽니다."

-성직자가 된 여러분들이야 취직 걱정은 없겠습니다만, 청춘 세대의 취업 고민은 너무나 절박한 현실이죠.

월서 스님="무조건 경쟁만 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제가 있는 사찰이 서울 강남에 있거든요. 공부도 잘 하고 집도 부자인 청년들도 늘 고민을 털어놔요. 다른 집은 아버지가 대학교수이고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그런데 그런 비교가 삶의 본질은 아니거든요."

김 교무="남과 비교하지 말고 기대치를 낮추면 좋겠어요. 물질만 추구하다 보면 아무리 좋은 직장을 가져도 마음의 허기가 달래지지 않을 거예요. 남들처럼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하고, 외제 승용차 사려고 대출받고…. 삶은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꿈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해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취업 걱정 없지만 어디나 윗분은 어려워

김 신부="청년들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요. 다만 고민하는 사고의 스펙트럼이 좁은 게 문제인 거죠. 온 몸을 다해 봉사해야 하는 성직자로서 미안함을 느껴요. 성직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신도들이 해결해 주는데, 우리는 왜 신도들의 고민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직책 높은 성직자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어요?

월서 스님="기본적으로 큰 스님은 제 스승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의 상사와는 많이 다르죠. 일과 생활과 마음 공부가 일치하는 삶을 사니까요."

배 전도사="교회마다 담임목사님 스타일따라 천차만별이죠. 군대 상사처럼 엄격한 분도 계시고…."

김 신부="주임 신부님들도 천차만별이예요. 군종 신부를 20년간 하신 분은 군대스타일 일수밖에 없죠. 배울 부분은 배우고 본받고 싶지 않으면 반면교사로 삼으면 됩니다."

◆파스타집 수다 뒤 "우리 다시 만날까요?"

-30년쯤 뒤면 여러분들이 4대 종교의 지도자급이 될 겁니다. 젊은 성직자로서 종교 갈등 해소와 사회 통합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월서 스님="종교인을 떠나서 우리는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 법칙을 생각하면 종교간 갈등도 없을 거예요."

배 전도사="한국 교회는 한 마디로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교회의 갈등이 사회 통합의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죠. 종교간 갈등 해소 이전에 개신교부터 하나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김 신부="요즘도 성탄절에 스님들이 성당에 난을 보내주시고, 우리도 초파일에 축복을 해드리는 걸 보면 이미 종교 갈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개신교의 분열도 다양성으로 바뀔 수 있다면 오히려 풍요로운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무="오늘 우리 넷의 만남이 하나의 해답이 아닐까요. 서로 껄끄러웠으면 얼굴을 붉혔을지도 모르는데 내내 유쾌하고 편안했습니다. 젊은 성직자들이 더 실천하고 노력해야죠. 우리 넷이 또 만날까요?"

진행=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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