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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한인 큐레이터 박정호 기획, 프릭콜렉션 '멘 인 아머' 전시를 가다

대가의 작품 '야코포 본콤파니'와 나란히 전시
귀족정치의 이상과 강인한 장군의 현실감 대비
과감한 구도, 거친 터치 통해 거장 화풍에 도전

최근 한인 큐레이터 박정호(38)씨가 기획한 전시 '멘 인 아머(Men In Armor)'가 주류 문화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프릭콜렉션에서 진행중인 이 전시는 단 2개 작품으로 구성된 초소형 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5개 이하 소형 전시 중 올해 최고일 것'이라고까지 평했다.

엘 그레코의 '빈첸조 아나스타지'와 시피오네 풀조네의 '야코포 본콤파니'가 이번 전시의 두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갑옷을 입은 인물을 다루고 있다. 대신 하나는 정교하고 하나는 다소 투박하다. 두 작품 모두 초상화 한 켠에 투구가 놓여있다. 한 명은 곱게 화장한 듯 잘 꾸며진 얼굴이지만 다른 한 명은 '생얼'에 가깝다.

왜 하필 이 두 작품일까? 이 둘의 상관 관계는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박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현재 뉴욕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씨가 프릭콜렉션 '앤 풀렛 펠로십' 대상자로 선정돼 활동하는 동안 기획한 것. 박씨는 9월부터 텍사스주립대 오스틴 캠퍼스에 있는 블랜턴 미술관(Blanton Museum of Art)로 옮겨 가 활동한다.

◆두 그림 속 인물은 누구?

미술관 중앙에 잔잔하게 흐르는 분수를 지나 메인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이 두 작품이 보인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이게 끝이다. 하지만 그림 너머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결코 끝이 보이지 않을 듯.

이번 전시의 메인이 되는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빈첸조 아나스타지'는 본래 프릭콜렉션이 소유하고 있던 작품이다. 그림 한 점이 홀로 존재할 때도 물론 큰 의미가 있지만 사실 '어떤 그림과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그림 속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번 전시가 그런 경우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새로 보기 위해선 옆에 짝을 이루고 있는 시피오네 풀조네(Scipione Pulzone 1540/42~1598)의 '야코포 본콤파니'를 먼저 보아야 한다.

이 그림 속에 앉아 있는 야코포 본콤파니는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13세의 아들. 볼로냐 출신인 본콤파니는 아버지가 교황으로 즉위한 직후인 1572년 로마로 옮겨온다.

두 달 뒤 로마 산탄젤로성의 성주(Castellan)가 되고 이어 자신의 아버지인 교황 군대의 수장으로 임명받는다. 쉽게 말하면 '낙하산'이다. 로마에 평생 둥지를 튼 귀족들에겐 그야말로 가십거리가 따로 없었을 것. 그림 속 얼굴을 보면 인물도 출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나스타지의 경우 몰타 기사회 회원으로 1565년 몰타섬에서 오스만투르크를 대항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수로 알려져 있었다. 뼛속까지 군인인 초상화하곤 별 인연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굳게 다문 입술에서 장수로서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본콤파니와 아나스타지의 인생 행로가 교차하는 지점은 산탄젤로성이다. 성주 본콤파니는 1575년 아나스타지를 부사관으로 임명해 자기 휘하에 두게 된다. 엘 그레코의 아나스타지 초상화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두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

아나스타지의 초상화를 그린 엘 그레코는 당시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본래 그리스 출신이지만 베네치아에서 서유럽 회화를 습득하면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화풍을 익혔다.

로마로 옮겨 와 활동을 하곤 있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1570년 로마로 와 파르네제 추기경 저택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으나 1년 반 후에 쫓겨났다. 후원자가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아나스타지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고 엘 그레코로서는 '아나스타지-풀조네-그레고리오 교황'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크가 한눈에 보였을 것. 돌파구였다.

한편 본콤파니의 초상화를 그린 풀조네는 1570~80년 로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초상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레고리오 13세를 비롯한 교황들과 추기경 등 핵심 인물들의 초상화를 수주받아 그렸다. 1574년에 그린 본콤파니 초상화는 로마 귀족사회에 본콤파니를 알리기 위한 '선전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적인 디테일로 유명했던 풀조네는 이 그림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낸다. 손목을 장식한 레이스 벨벳 커튼과 커튼 술 반짝이는 금속 표면 등 명암의 대조와 3차원적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법의 붓이 과연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림 속 인물을 이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좀 더 투박하고 거칠다. 이상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 곳곳에 있는 흰 머리. 적나라하게 남아 있는 붓 터치. 엘 그레코는 '풀조네처럼' 그릴 순 없었다. 여기서 엘 그레코가 선택한 방법은 과감함이었다.

당시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하게 여겨지던 것 중 하나가 금속성의 표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엘 그레코는 그 금속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갑옷에 반사된 빛을 강조했다. 인물 뒤 벨벳 커튼 또한 이 빛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흐르게 수정했다.

두 팔을 허리춤과 칼에 댄 것 굵은 종아리 등에서도 과감한 자신감이 나온다. 칼자루의 방향 또한 전통적인 몸 바깥 방향이 아닌 팔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수정한 것이 눈에 띈다. 정통에서 벗어난 과감함이다.

미술 전시의 현장에는 언제나 현장 너머의 이야기들이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때도 정통이 있었고 이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450년 전 권력과 알력 다툼 선전과 과시 경쟁의 현장을 그림 속에 재치 있게 녹여낸 이들이 있었기에 역사가 더욱 풍성해진 것은 아닐지.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

▶전시기간: 오는 10월 26일까지

▶전시장소: 1 이스트 70스트릿

▶전시문의: 212-288-0700 www.frick.org

☞프릭콜렉션은

피츠버그 출신 사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이 본래 살던 저택이었다. 1905년 뉴욕으로 온 뒤 1912~14년 사이 건축해 프릭이 1919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그의 사후 1935년 미술관으로 변신 대중에게 공개된 이곳은 비록 소규모이나 연간 27만5000~30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이다. 저택 특유의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내로라 하는 미술사 거장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

대표 상설 전시 작품으로는 조반니 벨리니의 '법열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in Ecstasy)' 부셰의 사계절 연작 등을 포함해 렘브란트 베르메르 고야 휘슬러 등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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