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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가수 이선희의 '30년'

신복례/사회부 부장

썩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목청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소리를 질러대는 데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감정선을 타고 자연스럽게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핑하고 튀어 올라가 때로는 듣는 게 부담스러운 가수였다. 그게 2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간간이 뉴스로 전해지는 활동 소식을 들었으나 그녀는 나에게 그저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던 왕년의 스타가수였다.

그런 이선희가 돌아왔다. 지난 3월 30년 노래인생이 녹아있는 정규 15집 앨범을 발매하면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하더니 최근에는 종합편성채널 JTBC 프로그램 '히든싱어3'에 출연해 그를 전설로 기억하는 후배들과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보는 이들을 가슴 뭉클하게 했다.

이선희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음반 제목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행운, 우연을 통해 만난 운명이란 뜻이란다. 5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다.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이선희의 인기는 1980년대 선풍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다. 내놓는 음반마다 빅히트를 쳤고 이선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27세에 서울시 최연소 시의원에 당선될 정도였다. 그리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는 그녀에게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했고 이혼한 그 남편이 자살하고 그후 4년 가까이 음반을 내지 못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 삽입된 노래 '인연'으로 인기를 얻으며 화려하게 복귀하는가 싶더니 마흔셋의 나이에 모든 것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노래하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처음에는 나의 에너지로 노래를 해요. 시간이 지나게 되면 나를 잃고 팬을 쫓아 노래를 하게 되죠. 그 시간마저 지나면 허탈감이 찾아와요. 나도 팬도 없는 공허한 순간이 돼요. 그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이 있어서예요. 아껴주고 힘을 주는 여러분, 노래하는 이선희로서 더 좋은 노래를 하겠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 딱 그 느낌을 주는 인터뷰였다.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한송이 국화 꽃.

유튜브에 들어가 타이틀 곡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들었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노래의 느낌이 달라졌다. 고음에 파워풀한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감정을 실어내는 기교가 훨씬 더 섬세해졌다.

이선희가 데뷔하던 시기 우리 또래들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섰을 나이가 됐다. 30년. 강산이 3번이나 변한다는 세월. 그 세월을 웃고 울고 버티고 살아온 '누님'과 '오빠'들에, 옛날 생각하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 한 곡 보내고 싶다. 이선희가 부른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다. 역시 유튜브에 가면 들을 수 있다.

오늘은 왠지 힘내서 다시 30년을 가보자고, 이번에는 이 산인가 저 산인가 기웃거리는 세월이 아니라 30년 걸어온 그 길을 나침반 삼아 가볍고 단순하게 그저 쭉 가보자고, 이미 몇 번이나 걸려 넘어져 본 돌멩이 다시 만난다한들 무엇이 겁나겠느냐며 "괜찮아 다 괜찮아"라는 호기를 부리면서 그렇게 같이 걸어보자고 손도 내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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