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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날라리 풍'으로…북한 TV 깜짝 변신

관영TV에 비친 북한 세태 변화
말투 빼면 서울과 다를 바 없어
EPL·분데스리가 축구 해설하고
세련된 스타일 젊은 방송인 급증

북한 TV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핑크빛 승마복에 모자까지 색깔을 맞춤해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의 말타기 때문입니다. 백마에 오른 그녀는 “박자를 제 때 맞추니 잘나가고 지내(매우) 재미가 붙습니다”라며 활짝 웃습니다. 평양식 말투만 빼면 영락없는 서울 스타일입니다.

 강사는 “발전적 견지에서 제가 결함을 지적하겠습네다”라며 ‘고삐 유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평양 외곽 미림승마구락부를 무대로 한 조선중앙TV의 승마 강습 프로그램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한 쌍의 부부가 능라인민유원지 미니골프장에서 퍼팅을 겨룹니다. 아내에게 내기에서 진 남편이 “꼭 들어갈 것만 같은데, 생각과 다르구만요”라고 머쓱해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골프는 채와 공으로 하는 경기며 1부터 18까지의 구멍(홀)에서 진행된다”는 설명을 곁들입니다.

 승마와 골프가 등장하는 북한 관영 매체는 뜻밖입니다. ‘혁명위업을 위한 선전 선동’이 본래의 존재이유니 말이죠. 이런 깜짝 변신은 진화 중입니다.



 세계체육소식에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나 독일 분데스리가 같은 수준급 축구가 소개됩니다. 해적방송이다 보니 화면 3~4군데를 지운 흔적도 드러나지만 북한식 축구용어를 쓰는 해설가는 진지합니다. 국제음악감상 코너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스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행진곡(Radetzky Marsch) 등이 관현악단의 레퍼터리입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동물들’이란 프로는 평양판 동물의 왕국이죠.

 북한 TV의 이런 모습은 예전엔 ‘부르주아 날라리 풍’으로 철퇴 맞았을 내용입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지시 때문에 지금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기마부대 몫이던 곳을 승마구락부로 바꿨고, 평양 대동강변 놀이공원엔 미니 골프 시설을 지었습니다. 클래식 음악프로의 등장도 스위스 조기유학의 영향 때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김일성 가계(家系)를 찬양하는 본 모습이 사라진건 아닙니다. 북한TV도 화면조정시간을 거쳐 맨처음 애국가로 시작합니다. 우리와 ‘국가(國歌)’이름은 같지만 ‘아침에 빛나라 조선~’으로 시작하는 전혀 다른 노래죠. 이어 한복차림의 아나운서가 “오늘은 8월 25일, 음력으로 8월 초하루입니다”라고 말한뒤 곧바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어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先軍)정치를 시작했다는 ‘선군명절’이라 휴일이었죠. 오전 9시 첫 프로그램은 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이었습니다. 이어 김정은의 지난주 ‘11월 2일 공장 방문’을 담은 15분짜리 영상물이 방영됐습니다. 김정일·김정은 찬양물로 이어지던 방송은 오후 아동시간에도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대원수님의 어린시절 이야기’을 내보냈습니다. 오후11시까지 24개 프로가 짜여졌는데, 그 중 5개가 이미 방영됐던 내용의 재탕입니다. 오후 5시와 8시 두 차례 메인보도는 어김없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로 시작합니다.

 무리수다 싶은 장면도 포착됩니다. 얼마 전 김정은의 군부대 방문 영상에는 “병사들의 체조경기 모습도 보아주시었다”는 소개멘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화면엔 병사 한명이 평행봉에 올라 회전하는 게 전부였죠. 김정은도 썰렁한 상황에 기가 막혔던지 실소를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동원된 주민·군인들에 밀려 김정은 경호라인이 붕괴하는 등 예상치 못한 장면도 그대로 방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합니다.

 일부 평양 특권층을 위한 선전 보도일 뿐이란 지적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TV의 변신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 들어 나타난 북한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죠. 방송인 세대교체도 그 중 하나입니다.

 4년 전 김정일 사망 부고를 알린 이춘희(71)는 김정은 보도를 전담하는 이른바 ‘1호 아나운서’입니다. 원로급인 그녀의 아성에 이젠 젊은세대가 바짝 다가섭니다. 스포츠 뉴스시간에는 머리를 짧게 잘라 멋을 낸 꽃미남 앵커가 같은 또래 여성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춥니다. 한복 일색이던 여성 아나운서들의 복장도 세련된 스타일로 바뀌면서 유행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북한TV를 직접 볼 수는 없느냐고요. 가능합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10월 우리 당국이 시청을 허용했습니다. 복제·전파 등의 행위없이 단순히 시청하는 건 문제없다는 결론입니다. 100만원 안팎인 위성방송 수신장비를 갖춰야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할 게 있습니다. 자극적 선전·선동과 반복 때문에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잘못 중독되면 들인 돈이 아까워질 수 있습니다. 며칠 시청하다보면 찬양가요를 저절로 흥얼거릴 수 있죠. 직업상 매일 들여다보고 분석해야 하는 제겐 ‘직업병’인 셈입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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