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지미 위협' 윤정희, 백건우와 결혼 후…

‘가을은 정녕 여성의 계절…찬연히 익어가는 가을은 한여름 거칠어진 피부를 소슬한 바람으로 맞는다.’

이 ‘시(詩)’적인 문구가 적힌 광고는 여드름약 광고다. 포스터 속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청초한 모습으로 배우 윤정희가 웃고 있다.

요즘 세대에게는 영화 ‘시(詩)(2010년·이창동 감독)’로 더 잘 알려진 배우 윤정희. 잊힌 줄만 알았던 그가 칸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서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여느 배우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배우 윤정희(70·손미자)는 세월의 흔적 조차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 ‘청춘극장(1967년·강대진 감독)’ 공모에 응시한 윤정희는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스크린에 데뷔했다. 윤정희는 데뷔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이어 출연한 영화 ‘강명화(1967년 강대진 감독)’가 다시 성공을 거두며 한국영화계에 기생영화를 유행시켰다. 세 번째 출연작 ‘안개(1967년·김수용 감독)’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윤정희는 당대 최고 여배우 ‘김지미’를 위협할 만큼 성장한다. 영화 ‘안개’는 주제곡도 인기를 끌어 가수 정훈희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영화 속에서 윤정희는 정훈희를 대창해 주제곡을 불렀다.

윤정희가 인기를 누리던 1960년대는 1년에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한해 1억8000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던 충무로의 전성기였다. 당시 극장을 찾는다는 것은 윤정희를 보러 간다는 의미였다. 윤정희가 선두로 흥행을 이끌었고 이후 문희와 남정임이 데뷔하며 ‘트로이카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전성기를 누리던 윤정희는 갑작스런 유학소식을 알렸다. 윤정희는 1973년 청룡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으로 프랑스 유학을 발표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영화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수많은 억측과 소문을 만들어 냈다. 스캔들로 인해 프랑스로 추방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당시 윤정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프랑스로 떠난 윤정희는 1976년 연하의 피아니스트 백건우(68)를 만나 결혼한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백건우는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윤정희 또한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중인 백건우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1977년 7월 윤정희 백건우 부부는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다. 지인에 의해 납북(拉北)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미수로 끝났지만 모두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이었다. 이들 부부가 결혼한 지 1년 4개월 만에 발생한 일이다.

윤정희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은 깊었다. 12년 간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열정을 이어갔다. 쉰 살에 영화 ‘만무방(1994년·엄종선 감독)’, 예순여섯의 나이에 영화 ‘시’로 대종상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조용히 하지만 쉼 없이 배우의 길을 가고 있다.

배재성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