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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문학적인 품격과 낭만이 넘쳐 (5) 에필로그-인문과 여유

[창간 40주년-발굴 특종]
한인 하와이 징용포로 소식지 '자유한인보' 발견

시·수필·소설 등 다양
한국어 연구에도 쓸모


"…토굴 속으로 폭탄이 날아왔다. 어둠 속에서 발밑에 걸리는 게 물컹거린다. 뛰어 넘으면 또 밟히고 넘어지면 손에도 피범벅된 사람의 신체 부위가 만져졌다. 세상 어딜 간들 이런 지옥이 있을까. 가는 곳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총 한자루 없이 수없이 터지는 공습과 함포 사격에 맞으면 죽고, 안 맞으면 잠시 생명을 연장하는 곳…"

하와이 포로생활을 하다 '자유한인보'를 가지고 귀국선을 탔던 권임준씨(2000년 76세로 작고)가 생전에 남긴 오키나와 징용생활 증언이다. 아들인 '독도화가' 권용섭(56)씨가 증언을 글로 남긴 것이다. 20살 나이에 끌려가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1년 5개월만에 귀국선에 오른다. 권임준은 동료 2700명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주소록 끝에 펜으로 시를 쓴 뒤 '1945년 12월 27일 선상에서'라고 맺는다. 身在南洋化土盡(몸은 남양에서 흙이 되었고)心魂北雁白雲歸(혼령은 북방 기러기와 구름되어 돌아가네) 海外英靈今安在(해외의 영령이여 이제 편히 계시게) 槿花天地日復明(무궁화 천지에 피고 태양도 다시 빛나리)

일제 패망 후 1945년 11월, 12월 2개월 남짓 기간동안 만들었던 포로 소식지 '자유한인보'에는 생사를 넘나든 포로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문적 품격과 여유가 넘친다. 21살 권임준이 남긴 한문시는 그들의 내면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연재소설도 있다. 향천이라는 이름의 필자는 '초월한 사랑'이란 소설에서 상처한 남자를 연모하던 처자가 찾아온 장면을 묘사한다. "…지금까지 황천객된 처를 생각코 셔글퍼 하엿쓰나 의외에 자기를 차저온 낭자를 보니 정신이 황홀하여질만치 곱고 아름다웟고 따라서 연정에 못이기여 온 것을 생각하니 깃부기 짝이 업서 달콤한 말을 주고받을 따름이다…" 수용 한인들 중에는 적지 않은 작가, 문인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한다. 문학과 역사에 대한 향기는 곳곳에 남겨진 시와 수필, 소설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창씨개명한 '야마히토'란 필자는 '내 역사 내 고향'이란 시에서 '역사의 죄를 지고/지옥을 헤매든 날/거기는 사람 찌는 가마솟도 있고/바늘로 얼킨 산도 잇썻다/그러나, 그러나…/뮈우면서도 그리운 것은 내 역사 내 향토엿다…'라고 노래했다. 조국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박순동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에서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키는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일화를 역사소설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수천명은 법의와 염주를 놋고(놓고) 갑주와 창검을 가추고 서산의 절 뜰에 느러서잇다…후에 서산은 몸이 달토록 나라일에 힘을 쓰고…"

자유한인보는 과도기 우리말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쓰는 사람마다 표기법이 다른 것이 많아 한글맞춤법이 일반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당시 표기법 연구에도 좋은 소재가 될 전망이다. 외국어표기에서 v발음을 ㅇ을 ㅂ옆에 붙인 '순경음ㅂ'으로 표기하고, Martin을 '마-ㄹ틴'으로 표기하는 등 지금보다 더 원음에 가깝게 표기했다.

자유한인보에서 펼쳐진 곱고 순수한 우리말 향연도 놀랍지만 논단의 글에선 어찌 저토록 강력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감탄한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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