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에 감금 당하엿으되 정신까지 포로는 아니다"…(3) 반성과 애국심
[창간 40주년] 발굴특종 한인 하와이 징용포로들의 소식지
'자유한인보' 진본 발견
분열·갈등 개인주의 지적
미·소 남북점령 현실 개탄
완전독립 위한 총력 결의
'자유한인보'는 하염없는 하와이 포로 생활을 하다 일본 패전 후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시점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1945년 11, 12월에 걸쳐 1~7호가 발간됐고 12월 26일 귀국선을 탔다. 귀국을 앞둔 2700명의 한인 포로들은 가족을 만날 들뜬 감상에 젖었지만 분열을 일삼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38선으로 갈리는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에 비분강개했다. 자유한인보에는 개인주의를 버리고 단결하여, 조국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자는 주장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4호에 익명으로 기재한 '우리들의 느낌'이란 글을 보자.(해독 가능한 표기 그대로 전재) "환향기에 닥친 동지여,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라!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분산을 합치는 것은 응당한 처사다. (중략) 세계의 정세를 깊이 살피자. 우리들 하나하나의 적은 힘으로 배겨낼 시대가 아니다." 포로들 사이에서도 많은 분열과 갈등이 상존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본군의 앞잡이로 동족을 가혹하게 다뤘던 인물들도 있었을 것이고, 친일 행적 정도에 따라 내적 단합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 된다.
수용소 내부 교육보호 시설인 '숭신사(崇新舍)'를 소개하는 글에선 "…입으로는 자유독립 말하면서도 내집, 내마누라 생각뿐이고…아직도 양반예찬설이 한창이며…식당에서 내가 조흔 밥을 먹겠다고 피가 터지고…"라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도호 필자의 '우리의 힘을 길릅시다'란 글도 비장하다. "민족공영이 즉 개인의 번영임을 깨닫지 못하고 항상 자족끼리 상살의 피를 씻으며 질투시기하고 호시탐탐 그 약점을 엿보고 잇는 침략자로 하여금 절호의 기회를 취득케하야 결국 동망(同亡)의 운명을 초치하야 금일에 이르게 함은…일가정의 생존과 안락만 취하고자 경쟁하엿지 민족전체와 국가란 것이 내 개인의 흥망과 연관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고 생각이 천박하엿으며 또한 무시한 소치로다….견인불발의 용기와 의중경명(義重輕命)하는 정신으로 국난을 돌파하고…."철저히 국력을 키워 다시는 비극을 맞지 말자는 결의다.
설악거사란 필명으로 쓴 글은 분단으로 치닫는 조국 현실에 대해 피를 토하듯 개탄한다. "신문 지상으로 보건대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놋고 남에는 미국, 북에는 소련 양개국이 지배 하에 잇다는…현상태의 조국을 어데라고 불러야 옳으며 우리가 갈 곳이 어데라 칭해야 옳으리요…우리가 지금까지 일구동성으로 독립만 원하엿쓰나 시기가 당도하니 파당의 싸움으로 도라가고 귀한 시일만 허송하지 안는가…철망 속에 감금을 당하엿을망정 정신까지 포로는 아니다. 3천이 합심하야 일치한 정신으로 귀환한다면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한뭉치가 되여서 조국의 완전독립, 아니 억수만년의 자유행락의 무대인 금수강산 삼천리를 맨들 껏이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갈 조국을 또다시 미, 소가 분할 점령하고 있으니 그 착잡해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유한인보 5호에도 애국적인 글은 곳곳에 스며 있다. 국천현 필자는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자'는 글을 남겼다. "죠국을 도라다보니 근심되는 바 많으며, 지금이 가장 중대한 위기인만큼 모든 파쟁을 깨끗이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40년 전 선배들이 조선의 완전강고한 독립국가를 창조하고저…절실히 느껴지는 것은 그 당시의 국정보다 지금의 국정이 더욱 위급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자주권을 위하야 대동단결하야 새조선 건설의 기초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층 조국을 사랑함으로 한번 죽어서 건국의 선봉이 되자…하루 바삐 우리 국토를 반환시키어 완전한 자주독립을 반석 우에 건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의 선배가 조국의 독립을 위하야 성심으로 제창하고 부르던 그 신념의 각서를 지금도 가지고 있음은 부인치 못할 것이다…." 이글을 보면 징용 포로들 중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그 계보를 잇는 인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청년들로서 비록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가 그들을 위해 싸웠으되 마음만은 조국과 민족을 잊지 않았던 우국충정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던지는 울림이 크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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