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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등사해서, 시사 교양잡지로 매주 발간…(1) 어떤 내용 담겼나

한인 징용포로들이 만든 '자유한인보' 진본 발견

기고문 곳곳에 나라걱정
시사에 유머·퀴즈코너까지
시·수필에 녹아있는 향수
남북 다툼엔 안타까워해


해방을 맞이하던 시절, 지금부터 70여년 전. 한글 고어체의 흔적이 물씬 묻어나는 한글·한문 혼용체의 잡지를 읽어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런데 글을 쓴 사람들이 일제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인들이고, 그들이 미군에 포로가 되어 하와이에 수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쓴 글이라면 더욱 특이한 환경과 소재가 드러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나라를 잃고, 일제에 끌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을 한 끝에 비록 포로가 되었지만 다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품은 식민지 출신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그런 환경에서 손글씨 등사본으로 50~60페이지에 달하는 시사 교양잡지를 순전한 창작 기고문으로 매주 발간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최초로 발견된 '자유한인보' 4, 5호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공지·주장=자유한인보는 수용됐던 2700여 명의 소식지 역할을 담당했다. 4호의 권두언은 '귀국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곧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소식을 실었다. 당시 포로 수용소 캠프 책임자는 해롤드 K. 하월 대위(당시 대좌로 불림)였다.

이 권두언에는 '하월 대좌가 우리들 중에서 30명을 본부로 청(請)하야 우리들이 바라는 귀국일을 발표하였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하월 대위가 '여러분의 귀국과 거기에 속한 여러가지 문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2700명의 귀국 절차를 대표할 대표자를 선거를 통해 선출할 것과 12월 26일 귀국선이 떠날 것이란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공고문에는 서로 손잡고 증오심을 버리라는 말이 나온다.

여러 기고문에도 단결하자는 내용, 조국이 분단되려 하는데 우리가 들어가면 힘을 합쳐 막아야 한다는 내용, 힘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 이기주의를 버리자는 주장 등 우국지사적인 큰 목소리가 곳곳에 배어 있다.

'우리들의 느낌'이란 제목의 무명으로 쓴 글은 '반목질시하여 오던 오해를 일소하고…격렬한 단결에 공헌하자'고 호소한다. 징용포로들 중에서도 친일 성향의 정도에 따라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분열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문학=전쟁의 참상 속에서 고통받고 외로웠던 심정, 그리고 고향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시와 수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도(孤島)에의 추억'(김병태)이란 에세이에는 '마낑도'에서 미군 공습에 시달린 나머지 어느 날 밤 지붕을 오가는 고양이 소리에 누가 놀랐고, 그 소리에 공습이야, 상륙이야 하는 집단 공포가 퍼지면서 바다로 뛰어들고, 병이 깨진 곳으로 도망가다 다치는 등 아비규환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양이 공습'의 웃지 못할 추억을 소개한다.

일제 말기 새로운 시 형태로 유행한 '신체시(新體詩)' 코너도 있다.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싸우는 바람에 통일 조국이 멀어지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표현한 '조선'(유지석)도 눈길을 끈다. '붉은 적삼 파란 치마/세면하고 분 발으니/순진한 시골 처녀…북쪽에서 모여들고/남방에서 찾어와서/온갖 꾀임 다해가며/서로 탐만 내누나…'

▶교양='시론' 코너 4, 5호에 '콤롬비아의 도시 개선'이란 제목의 번역 글이 실려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0월호에서 '씰비아 마-ㄹ틴'이란 사람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전문을 보면 '우리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도시정리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콤롬비아의 도시 개선의 역사를 기재하여 참고할까 한다'고 쓰고 있다. 내용엔 산이 많아 계곡으로 분리되어 살고 있는 콜롬비아 국민들이 '공공향상회'란 단체를 통해 국가적인 결속과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낙후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걱정한 흔적이 역력하다.

▶뉴스·시사='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신문 사설'이란 제목의 글에는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한인은 일본인 같이 고양이처럼 살아왔다'라고 했는데 이는 한인을 업신여긴 것이고 1세기간 창조한 미국의 신망을 손상시킨 것이다'고 지적한 미국 신문 사설을 소개했다. 남북 사이에 38선을 그은 것에 항의하는 중국 등 해외동포들의 시위를 전하는 소식도 담겨 있다.

▶오락=유머, 퀴즈 코너도 있다. 지금으로 치면 O,X 문제인데 '조선 13도는 전부 바다를 끼고 있다' '향수 1온스를 만들려면 장미 40송이가 필요하다'에 맞다, 틀리다로 답하는 식인데 다음 호에 정답을 게재한다.

유머 코너엔 '처음보는 아들!?'이란 제목의 글도 있다. 귀국했더니 아내가 3살 짜리 모르는 아들을 키우는 걸보고 '(나)저 애는 웬 어린애요? (아내)저…저…(나)대관절 몇 살이나 되었오. (아내)세 살입니다. (나)오-그러면 내가 남양으로 온 지 아홉 달 되어서 난 것이로군…허허허허'라고 맺는다. 가족 생이별의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물 나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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