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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80%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교황 연대기』 쓴 노리치 인터뷰
교황 300여 명 대하소설처럼 풀어
존경 받지만 외로이 밥 먹는 사람
아시아·아프리카 교황 곧 나올 것

교황 연대기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길영·임지연·유혜인 옮김
바다출판사, 872쪽, 3만8000원

“교황(Pope)이란 단어는 짧다. 하지만 이 단어는 하늘과 세상의 모든 걸 지배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1200년대 시인 하인리히의 말이다. 그로부터 800여 년이 흘렀다. 교황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게 됐으나 그는 여전히 막강하다.



 ‘영국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며 다양한 역사현장을 저술해온 존 줄리어스 노리치가 교황제를 파고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의 제도 가운데 2000년 가까이 단절 없이 이어온 유일한 제도이므로. 그는 교황제를 ‘완전한 군주제(Absolute Mornach)’라고 규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맞춰 나온 『교황 연대기』를 읽다 보면 그 말에 절로 수긍하게 된다.

 872쪽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분량이다. 책에 언급된 교황이 300여 명에 이르니 교황 개개인에 대한 서술은 자세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무렵 대하소설 한 편을 완독한 느낌이 들 거다.

 이 책은 영미권에선 2011년 발간됐다. 본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얘기를 볼 수 없는 이유다. 런던 리틀베니스 의 자택을 찾아가 뒷얘기를 좀더 들었다. 85세인 그는 막 또 다른 저술을 끝냈다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교황제도가 2000년 이어온 요체는 뭔가.

 “모르겠다. 아마도 인간에게 있는 종교적 본능? 교황제는 여전히 잘 굴러간다. 책을 쓰게 된 까닭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 교황의 75~80%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주 부패하고 부정직한 이도, 알콜중독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교황 중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나에겐 니콜라오 5세(재위 1447~55)다. 바티칸도서관을 건립했고 그곳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교회도 잘 운영했다. 그럼에도 명예나 찬사를 추구하지 않은 겸손한, 완벽한 분이었다.”

 -반면 최악은.

 “성스러운 분이긴 한데 첼레스티노 5세(1294)다. 무학의 은자(隱者)였다. 적절한 이탈리어를 할 줄 몰랐다. 작은 수도실에서 지내며 교회 운영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신만이 그가 왜 교황이 됐는지 알 거다. 가에타니 추기경(보니파시오 8세·재위 1294~1303)이 수도실을 향해 마치 신인 양 ‘나는 신이다. 교황직을 당장 관둬라’라고 말하자 그걸 신의 계시로 여기고 물러났다는 얘기가 있다.”

 -자발적으로 관둔 교황은 그 후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뿐이다.

 “지금의 교황이 더 낫긴 하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물러난 건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교황직은 신에 의해 선택된 외로운 책무다. 65세이니 은퇴하자 이럴 수 있는 게 아니다.”

 -교황이 외롭다니.

 “메디치 출신의 레오 10세(재위 1513~21)는 조카에게 ‘이제 교황권을 가졌으니 즐기자’는 서한을 보냈다. 실제 즐겼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내가 알기론 거의 혼자 밥을 먹는다.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만 그게 다다. 단상 위에 홀로 선 이다.”

 -한때 교황은 유럽정치를 쥐락펴락했다.

 “1870년대 교황령을 잃은 뒤론 아니다. 이젠 영적 지도자일 뿐이다. 그건 옳은 변화였다.”

 -1978년 8월~9월 33일 동안 교황을 지낸 요한 바오로 1세를 두곤 암살설을 소개했다.

 “난 암살당했다고 생각한다(※책에선 암살이란 책과 아니란 책을 동시에 소개하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다). 그가 베네치아 대주교일 때 알고 지냈다. 아주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교황이 되곤 어느 날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로부터 3~4시간 안에 모든 증거가 사라졌다. 그가 그곳에 살았다는 단 하나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바티칸은행 연루설을 소개했다.

 “그가 암살당한 이유라고 본다. 그는 14살인가에 학교를 떠났지만 수학적 마인드는 놀라울 정도였다. 대차대조표를 보기만 해도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렸다. 베네토 주교였을 때 교회가 신용사기에 연루된 걸 파헤쳐 공개한 일도 있었다. 바티칸엔 더한 문제가 있었다.”

 -책엔 언급하지 않은 내용인데.

 “결국 한 달 교황인데 50쪽을 쓸 순 없는 것 아닌가”(※‘바티칸에서 정말 찾기 어려운 건 바로 정직과 맛있는 커피’라고 말하곤 했던 요한 바오로 1세에게 저자는 5쪽을 할애했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좋은 교황의 자질은 뭐라고 보나.

 “신앙심이 깊어야 한다. 또 아주 강건한 체질이어야 한다. 비오 12세(재위 1939~58)는 로마를 떠난 일이 없다. 웃는 법도 없었다. 요즘 교황들은 항상 돌아다닌다. 매력도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얘기를 할 때다.

 “기대가 굉장히 높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러나 아직 한 일은 없다. 그가 겸손함을 드러내는 방식엔 불만이 있다. 어느 정도 격식은 필요한 법이다. 가톨릭계의 오랜 이슈인 피임이나 사제 결혼에 대해서도 아직 별다른 말이 없다.”

 -가톨릭 교세가 유럽에선 약해지고 있는데.

 “더 약해질 거다. 믿음을 잃고 있다. 장차 로마 가톨릭 교회가 유럽이 아닌 남미나 아시아·아프리카에 있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비유럽 출신의 교황이 나오는데 2000년이 걸렸지만 아시아 교황, 아프리카 교황은 그보다 더 빨리 나올 거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교황제가 또 2000년을 가겠는가’였다. 그는 주저함 없이 답했다.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교황 세 명 직접 만난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로 유명한 노리치는 귀족 그 중에서도 후작이다. 1800년 전후 영국 왕이었던 윌리엄 4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고위 외교관이었다. 그 덕분에 세 명의 교황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비오 12세(재위 1939~58)와 요한 23세(재위 1958~63), 그리고 바오로 6세(재위 1963~78)였다.

 그는 세 교황을 두고 “너무나도 다른 분들”이라고 했다.

 요한 23세는 종종 노리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부친이 파리 주재 영국대사일 때였다. 교황은 온몸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 는 밝으면서도 편안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혁신을 추구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노리치는 “여러모로 다감한 면이 많았다”며 “슬픈 분이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비오 12세는 정반대로 위엄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도 있다고 했다. 교황은 자녀가 있는 이에게 “여자아이냐 남자아이냐”라고 묻고는 여자아이용으론 하얀 묵주, 남자아이용으론 검은 묵주를 건네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미국 상원의원에게 자녀의 성별을 묻는다는 게 그만 “블랙(흑인으로 해석 여지)이냐 화이트냐”라고 했다는 거다. 노리치는 “막판엔 정신이 명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오로 6세와는 10분 안팎 만났는데 노리치는 “훌륭하다곤 할 수 없으나 열심히 일한 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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