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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기] 언어에 제한되지 않는 성경

하나님은 무한하며 영원하며 불변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람의 머리로는 능히 파악되지 않기에 인간이 확실히 아는 것들에서 유추하는 속성의 지식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온갖 종류의 한계가 전혀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영원성은 피조물의 속성이라 할 시간성이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불변성은 무시로 변하는 피조물의 가변성이 하나님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속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유한성과 시간성과 가변성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그러한 속성으로 서술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서술할 때에는 부정적인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이다'가 아니라 부정적인 '아니다'의 술어를 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어법 사용에 두각을 드러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질적인 속성의 제한이 없으신 선이시며(sine qualitate bonum), 분량으로 가늠되지 않으시는 웅대한 분이시며(sine quantitate magnum), 결핍이 없으신 창조자가 되시며(sine indigentia creatorem), 처소가 없이 거하시는 분이시며(sine situ praesentem), 만물을 조건 없이 유지하는 분이시며(sine habitu omnia continentem), 공간에 제한됨이 없이 도처에 편재하는 분이시며(sine loco ubique totum),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 영원하신 분이시며(sine tempore sempiternum),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시되 변동될 것들을 만드는 분이시며(sine ulla sui mutatione mutabilia facientem), 외부에서 당하시는 수동성이 없으신 분(nihilque patientem)”이라고 했습니다.

시편은 늘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시작도 없으시고 끝도 없으시기 때문에 시간의 유한한 길이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생에 의해 파악되실 수도 없고 판단 받으실 수도 없는 분입니다. 비록 자신에 대하여 처음과 나중이란 표현을 쓰셨지만 그렇다고 시간성이 투사된 ‘처음’과 ‘나중’ 개념에 근거하여 시간적인 사유의 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읽으려는 태도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함을 땅으로 끌어내릴 빌미를 언어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초대교회 시대부터 구사된 것이었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때로는 언어사용 중단으로 대응하고 때로는 언어의 역설적인 사용으로 맞서 왔습니다.

언어의 한계와 빈곤 속에서도 성경은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계시의 주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기록된 계시가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고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고 인간 저자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계시가 인간의 오류와 역사의 우연성과 언어의 빈곤에 억류되어 있다고 보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병수 박사/ 칼빈신학교

aposo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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