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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문화풍경>'늦은 봄’과 동행하다

해마다 달라스에서 열리는 아시안 영화인들의 축제가 어제(17일) 막을 내렸다. 올핸 특히 유례없이 많은 한국영화가 초청되어 달라스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움과 흥미로움이 교차되었다.

특히 아리조나 국제영화제(4월)에서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밀라노 국제영화제(5월)에서 대상(Best Film)과 여우주연상, 촬영상 등 3관왕의 쾌거를 이룬 영화 ‘봄’에 대한 관심은 특별해서 영화제 소식을 듣자마자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젤 먼저 상영 스케줄을 확인했다. 늦은 밤시간이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도 채 상영되기 전인 이 특별한 영화를 달라스에서 열리는 영화제 스크린에서 꼭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안젤리카 필름센터를 찾았다.

예상대로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아시안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서구인들로 구성된 3~40명의 영화 매니아들이 자정시간에 끝나는 영화임에도 마다하지 않고 이 화제의 영화를 찾아 왔다. 시간이 되자 영화제 스텝 중 한 명의 장난기섞인 영화제 소개가 있었고 이어서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초록빛으로 물든 드넓은 들판,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진 산과 강물, 그 풍경속을 천천히 걷는 여자,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클래식 연주. 첫 장면부터 가슴이 먹먹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된 선명한 고향 산천과 그 풍경속으로 애잔하게 젖어드는 것 같은 첼로 선율이 그동안 무심하게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란 정서를 건드렸던 것일까.



미술감독으로 잔뼈가 굵은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영상도 놓치기 아까웠다. 사소한 예로 시골 마당 빨랫줄에서 너울대는 하얀 포목들이나 강물 위에 세워진 조각가의 작업실 뒤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장면들은 영상 하나만으로도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영화 '봄'은 주목받는 조각가인 한 남자가 불치병에 걸려 인생을 포기한채 살고 있고 이를 안타까워한 아내가 폭력남편과 가난에 허덕이는 연약한 한 여인을 남편의 누드 모델로 기용하면서 남편의 예술혼을 되살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비참한 현실아래 자신을 잊고 살아온 여인은 조각가의 모델이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신체를 통한 미의 탐닉으로 일생을 살아 온 조각가 역시 작업실을 비추는 햇살처럼 순수한 그녀를 통해 참된 아름다움은 바로 삶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그녀의 억압된 인생을 탈출시키기 위해 그녀의 폭력남편을 살해한 뒤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내 인생은 ‘겨울’이지만 뒤늦게서야 예술가로서의 삶은 ‘봄’을 맞이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말 속에서 이 영화의 영어제목인 ‘Late Spring’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슴졸이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이나 웃음이 나왔던 장면, 가슴 충만한 감동으로 벅차했던 장면 등에서 그들 역시 똑같이 반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백인 여성은 안경을 들고 눈물을 닦는 모습까지 보였다. 영화는 과연 모든 민족과 문화,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공감대를 끌어내는 강력한 매체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달라스의 한 여름속에서 예술적 인생의 ‘늦은 봄’과 동행한 추억은 아마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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