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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복잡한 문제, 먼저 '상식'으로 풀어야

목회자 청빙 문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지난 수년간 교계의 청빙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일시적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같은 패턴이 계속됐다. 반복되는 현상과 일련의 흐름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 취재 동기였다.

지난주 청빙 문제의 실상을 보도했다. 분명한 것은 청빙은 절대로 '단일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원인을 한두 가지로 압축시키기엔 무리가 있고, 어떤 결론을 선명히 도출해내기도 어렵다. 그만큼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힌 채 교계의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문제였다.

취재 결과 각 교단이 정해놓은 청빙 철칙은 유명무실했다. 심지어 청빙 받은 목회자가 그만둘 경우 각 교회 또는 교단이 정한 사임 원칙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청빙 과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목사들이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건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시됐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교회 소속이다. 그럼에도, 청빙은 교회와 교회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교회와 교단이 배제된 채 개인 간의 협의가 우선시 되고 있다.

목사가 청빙 제의를 받아도 소속 교회에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건 슬픈 현실이다. 말만 '한 가족', '한 공동체'를 외쳤을 뿐이지 정작 중요한 고민을 나눌 수 없는 반쪽짜리 관계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청빙시 검증은 인지도가 높을수록 생략되기 십상이다. 실제 설교 한 두 편과 면접 등으로 어떻게 투명하고 공정한 선별이 가능할까. 이는 청빙에 있어 성경에 기반한 본질적 기준보다는 사실상 스펙, 유명세, 인맥, 대형교회 시무 경험 등이 더 부각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짧은 기간 내 청빙을 마무리한 교회들이 실제 어떤 기준으로 목사를 선별했는지 의문이다.

교계란 영역은 현실상 그렇게 평등하지 않다. 교회 규모에 따라 암묵적으로 계층이 구분된다. 청빙이 소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가능한 이유다. 그런 무형의 기준을 맞추려고 수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무의식 속에 '신분 상승'을 추구한다. 이는 '스타 목사'가 가진 아우라를 영향력으로 인식 또는 인정해준 교인들의 잘못이다. 성경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고 배웠겠지만 신앙이 이론으로 머문 결과였다.

예전부터 교회들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교회에 대한 모든 질문은 개신교가 주장하는 '다름의 명제'를 바탕으로 시작돼야 한다.

취재 가운데 느끼고 접한 오늘날 목회자들의 이동 원리는 사회의 방식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윤리 의식마저 없는 모습은 세상보다 못하다.

그럴수록 최소한 '상식'은 지켜져야 한다. 이는 문제의 썩은 뿌리를 인식하고 개선해나가는 초입이 될 수 있다.

상식이 배제된 상황에서 '청빙'이라는 거대 담론을 나누는 건 너무나 무의미하다. 대안제시보다 급한 게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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