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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씨! 미군부대앞서 소리 질렀다…배가 고파서"

자서전 '액션 테이커' 영문판 펴낸 장정헌 회장
시린 어린시절까지 담아
부족함이 늘 나를 이끌어
이젠 막노동 아버지 이해

"색씨, 색씨!"

해질녘 미군 부대 앞에서 소년이 소리쳤다. 고함은 배고파서 간절했다.

소년은 미군들이 따라오면 '언덕 집'으로 데리고 갔다. 문 앞에서 아가씨가 분 냄새를 풍기며 미군들을 반겼다. 소년에게는 동전 한 닢을 줬다.

빼앗길세라 동전을 움켜쥔 소년은 영등포역 다리 밑으로 한걸음에 뛰었다. 노점상이 '기름 옷 입힌' 닭다리를 팔았다.



소년이 사온 닭다리를 누나는 큰 솥에 넣고 닭국을 끓였다. 소년의 여섯 식구는 며칠 동안 배고파 하지 않아도 됐다. 색씨라는 말은 그들에겐 '밥'과 동의어였다.

아홉 살 소년은 이제 일흔을 넘겼다. 그는 저서에서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고 썼다.

기억하는 고생 때문이 아니라 몰랐던 사실 탓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색시는 영어로 '섹시(sexy)'를 뜻했고, 아홉 살짜리가 돈 받고 한 일은 매춘 호객이었다. 또 그때 산 닭다리는 미군들이 먹다 버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었다…."

시린 기억을 담은 책은 유니뱅크 지주회사 장정헌(72) 회장의 자서전 '액션 테이커' 영문판이다. 2년 전 펴낸 한글판〈본지 2012년 3월27일 A-18면>에 유년시절 이야기를 더했다. 불과 13페이지를 추가했지만 책의 무게는 더 두터워졌다. 1940년대 태어나 전쟁을 겪고, 이후에도 전쟁처럼 살았던 세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사랑이 고팠던" 아이, 한겨울에 피난가며 아버지의 허리끈을 붙잡고 "이줄을 놓으면 난 죽는다"던 기억, "길거리서 한개피씩 구걸한 담배를 되팔았던" 소년의 아픔 등이 전쟁영화처럼 생생하다.

책은 결국 '결핍'으로 완성된다. 부족해서 채우려 했던 노력이다.

'색씨'를 외쳤던 9살 때나, LA지사장으로 일하다 본사 부도로 길거리로 내앉았을 때나, 세탁소 운영 시절 하루 일을 못하면 이틀을 굶어야 했을 때나 그를 이끈 것은 부족함이었다.

-영어판을 출간한 이유는.

"내 아버지와 아버지가 된 나의 삶을 장차 부모가 될 자녀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책은 소통의 수단이자 교과서에 없는 이민 1세의 역사를 적고 싶었다."

-아버지의 기억을 썼다.

"아버지는 지게꾼 막노동자였다. 사춘기 때 아버지가 창피했다. 그런데 이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 못했다. 마찬가ㅓ지로 자식세대들도 우릴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서전 때문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변 사람보다 내가 바뀌었다. 가끔 책을 보면 '참 나는 운좋은 사람이구나' 깨닫는다. 종종 모르는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할 때도 고맙다."

-은행 이사회장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치미는 화를 삭히기 어렵다. 화날 때 소리를 지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CEO는 화를 내기보다 냉정히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책에 대한 비판은 없었는지 물었다. "있다"고 했다. '그 정도 고생 안한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핀잔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는 정면승부를 택했단다.

"난 모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다들 이끌어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내 창피스러운 과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세권도 쓸 수 있지 않겠나."

책은 아마존(amazon.com)에서 구할 수 있다.

정구현 기자

☞장정헌 회장 약력

1942년생. 동국대학교 경영학과(61학번). 1970년대 초 원목 수입 업체의 미국 지사장으로 나왔다가 본사의 부도로 세탁소를 시작함.

이후 폐지 수집소, 무역 회사, 의류 업체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염색 공장 USDF를 인수해 가주 최대 규모로 성장시켜 매각하면서 백만장자가 됐다. 현재 워싱턴주에 있는 유니은행 금융지주 이사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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