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앞으로는 뒤를 볼 일…오늘 개막 부산모터쇼 새 트렌드
'후미는 차량의 마무리' 인식 탈피
차별화 뒤 브랜드 알릴 공간으로
뒤차에 오래 노출, 디자인 심혈
마치 연미복을 입은 듯 매끈한 차림새다. 이탈리아 고성능차 마세라티가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 콰트로포르테 디젤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 차는 275마력의 힘을 내뿜는 6기통 3L 터보 디젤 엔진을 달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달리는 데 6.4초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연비는 L당 16.1㎞(유럽 기준) 수준이다.
특히나 후면 디자인은 탄탄한 곡선이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 부산국제모터쇼 언론 설명회에서 가에타노 마리노 마세라티 아태지역 디렉터는 "(콰트로포르테 디젤의 뒷모양은)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짧은 후미가 강렬한 이미지를 만든다"며 "여기에다 우아함을 갖춘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재규어가 내놓은 F타입 쿠페의 후면은 두툼한 볼륨감이 자랑이다. 이 회사 조주현 이사는 "스포츠 드라이빙이라는 강력한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트렁크부터 뒷바퀴 라인에 최대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부산모터쇼에선 자동차들의 개성 있는 뒤태 디자인이 두드러졌다. 때론 역동적인 표현으로, 때론 믿음직함을 강조하면서 '엉덩이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울산과학기술대 정연우(디자인학)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뚜렷한 트렌드는 공격성"이라며 "후면 역시 차종별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발톱으로 할퀸 듯한 뒤태가 돋보이는 재규어 XJ, 도넛 모양의 후미등 조명을 적용한 미니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마무리' 정도로 여겨졌던 자동차의 뒤태가 '화룡점정의 마침표'로 격상된 것이다. 국내 자동차 디자인 박사 1호인 구상 국민대 교수는 "그동안 차량의 전면은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인상성·수직성이, 후면은 비교적 오랫동안 뒤 차량에 노출되기 때문에 안정성·수평성이 디자인 포인트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초라도 빨리 자기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시인성이 업계의 숙제가 됐고, 자연스럽게 차량 후면이 '제2의 얼굴'로 떠올랐다.
전면부가 얼굴, 측면은 기본 자세, 후면은 마무리라는 기존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 이근(디자인학) 교수는 "여기에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이 적용되면서 빛의 흐름까지 담아내는 수준으로 진화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시된 차종 중에는 렉서스 RC F의 후면 디자인이 가장 공격적이라는 평가였다. 이 차는 5L 엔진에 450마력 성능으로, 렉서스 엔진 중 가장 힘이 뛰어나다. 이런 '스펙'을 자랑하려는 듯 후미등을 활용해 렉서스의 이니셜인 'L'자를 뚜렷하게 형상화했다. 평소에는 접혀 있다가 시속 80㎞가 넘으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액티브 리어윙'까지 근육질 스타일을 뽐낸다.
RC F가 '으랏차차' 하는 역도 선수라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뉴 C클래스는 기계체조 선수에 가깝다. 탄탄하면서도 선이 살아 있는 부드러운 몸매다. 트렁크 디자인이 'V' 형태로 돼 있는데 마치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선수의 근육질 어깨를 보는 듯하다. 회사 측은 "차가 더 넓고 역동적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닛산이 올 하반기 출시할 계획인 소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캐시카이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매력이다. 여기에다 번호판을 중심으로 역사다리꼴로 포인트를 줘 활력을 더한다. BMW의 4인용 쿠페 뉴 4시리즈 그란쿠페의 뒤태는 날렵한 수평 라인이 눈길을 끈다. 외관 디자인을 맡은 강원규 BMW 디자이너는 "우아한 존재감과 넓은 바퀴 간격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레저용 차량(RV)인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LWB)는 뒷면이 아주 간결하다. 굵은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반듯하게 각이 잡혀 있어 '나를 믿어달라'고 묵묵히 호소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모든 차량이 남성미로 승부수를 띄운 것은 아니다. 인피니티가 내놓은 7인승 하이브리드 QX60은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입체감을 살린 디자인과 대형 LED 등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기아자동차 컨셉트카 GT4 스팅어와 BMW 전기차 i3, 도요타 컨셉트카 펀비 등은 디지털 느낌이 묻어난다. 손안에 있는 깜찍한 스마트폰이 도로 위를 달린다는 느낌이다. 경유 1L로 최대 111.1㎞를 달릴 수 있는 폴크스바겐 컨셉트카 XL1은 좌우 폭이 좁아지는 트레일링 에지(Trailing Edges) 기법을 도입했다. 기류를 부드럽게 해 연료를 절약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뒷바퀴를 덮개로 덮은 것도 같은 이유다.
현대차·기아차 역시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구상 교수는 "2011년 기아 옵티마가 'V' 자 모양으로 좌우 대칭이면서 후미등이 옆면으로 깊게 파고 들어간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이후 국내 자동차 업계에 후미 차별화 트렌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신형 쏘나타는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조화미, 제네시스는 절제된 정숙미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주 기아차가 발표한 올 뉴 세도나에 대해선 "스포티한 범퍼, 단단하면서 균형 잡힌 디자인을 갖췄다"고 말했다. 쏘나타 디자인 책임자인 현대차 장재봉 외관디자인팀장은 "단순한 디자인을 구현하면서 독창적인 주야간 점등 이미지로 브랜드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반면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뜻에서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고유한 디자인을 계승한 브랜드도 있다. 아우디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A3 e-트론과 폴크스바겐 골프 GTI, 뉴 미니 등이 이런 사례다. 폴크스바겐 골프 GTI는 특유의 간결한 강인함이, 뉴 미니는 수직으로 디자인된 후미등이 그대로 이어졌다. 포드가 올가을께 출시 예정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링컨 MKC는 전 세대와 같이 후면 전체를 잇는 일자형 테일 램프를 달았다.
부산=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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