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국의 재난 시스템(하)…현장엔 늘 민간구조원 먼저 도착, 상황 파악 완료
5분내 투입 피해 상황 체크…이후 구조대에 전달
주민으로 구성돼 대응 유리…전국서 4500만명 활약
할리우드 인근 주택가에 여객기가 추락했다. 항공기가 떨어지면서 주택 5채를 덮쳐 2채가 동체 밑에 깔렸다. 비행기는 산산 조각나 화염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폭발음이 뒤섞인 현장은 아비규환이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은 LA인근 유니버셜 스튜디오 대형 세트장이다. 이날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실시하는 가주 합동 구조대응팀 훈련을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
사고 발생 후 5분. 최초로 현장에 투입된 건 정부의 구조대원들이 아니다. 민간 구조대 '커뮤니티응급구조팀(CERT)' 대원 20여 명이다. 이들의 임무는 사고 피해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가장 피해가 큰 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 대원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며 지도에 사고 피해 상황을 세세히 기록했다.
사고 발생 후 15분. LA소방국(LAFD)등 지역 소방국 연합 구조대 USAR(Urban Search And Rescue)이 도착했다.
CERT의 토마스 레이 팀장은 피해 상황을 기록한 지도를 취합해 USAR의 마이크 캐머러 캡틴에게 건넸다. USAR은 CERT가 조사한 1차 피해 상황을 토대로 수색 작업을 벌였고, 40분 만에 피해자들을 모두 찾아 구조했다.
사고 발생 신고 접수부터 상황 파악, 피해자 수색, 구조 작업까지 걸린 시간은 총 55분이다.
가상이지만 항공기 추락이라는 대형 참사 현장에서 정부 구조팀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한 숨은 조력자는 시민들이었다. '최초의 현장 구조대' CERT 덕분이다.
CERT의 레이 팀장은 "민간 구조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구조팀 도착전 피해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며 "정부 구조대의 효율적인 구조 작업을 돕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CERT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산하 조직으로 설립된 민간자원봉사구조대다. CERT는 LAFD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LAFD는 1985년 일본 교토 지진 현장에 파견됐다가 지역 민간 구조대의 활약을 목격했다.
이후 연방 정부에 수차례 민간구조대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FEMA는 1993년 30명으로 구성된 LA CERT를 공식 조직으로 승인했다. 현재 CERT 대원은 전국 각 지역에서 약 4500만 명이 활동중이다.
미국 전체인구 3억2000만 명중 15%가 최초 구조대로 상시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CERT는 팀장 아래 수색팀, 통신팀, 의료팀, 협력팀으로 구성 된다. 사고 발생 시 수색팀은 현장 피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 전문 구조대에 전달하고, 통신팀은 일대에 마비된 통신 시설을 복구에 나선다. 의료팀은 현장 응급 조치가 필요한 피해자들의 치료를, 협력팀은 전문 구조대와의 의견 조율을 맡는다.
정부에서는 CERT의 활약을 높이 평가한다. USAR의 캐머러 캡틴은 "주민들은 사고 지역의 지리와 날씨 등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전문 구조대보다 초기 대응을 하기에 더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CERT 대원이 되는 길은 어렵지 않다. 지원 자격은 '18세 이상 성인이며 공동체 의식이 투철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진 자'다. 선발을 위한 시험 과정도 없다. 제임스 피더스톤 LAFD 국장은 "재난 발생 시 이웃과 가족, 공동의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정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 전문 구조인력이 현장에 나서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훈련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GPS 코드 파악 및 지도 읽는 법, 소규모 화재 진압 요령, 심폐 소생술 등을 포함한 응급 조치법, 탈출 전략법, 전문 구조대와의 협력술, 통신기기설치법 등이다.
CERT 대원으로 선발되면 첫 7주 동안 총 17시간 30분의 기초 훈련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후에는 매년 2차례 실전 훈련을 받는다. 또 수시로 지역 소방국의 구조 활동에 참여해 실전 감각을 익히기도 한다.
20일 모의 훈련에는 얼굴 전체가 화상 상처로 가득한 CERT 대원 캐서린 매이(54)씨도 있었다.
매이씨는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당시 CERT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매이씨는 "죽는구나 싶었을 때 CERT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이젠 내가 가장 먼저 이웃을 구할 차례"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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