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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가작] 겨울 햇볕이 주는 행복

신재동

아침운동 길에 나섰으나 공기가 차가워 나도 모르게 빨리 걷게 됩니다. 샤봇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생겨난 길에서도 양지바른 쪽을 선택해서 부지런히 걷습니다. 호숫가의 아침 공기는 찬물을 한 대접 마신 것처럼 가슴에 와 닫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호수를 반 바퀴쯤 걸어가면 낚시꾼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마루판을 물 위에 띄어 놓은 곳이 나의 반환지점입니다. 캘리포니아의 긴 겨울 가뭄으로 흙길에 먼지가 발에 차이고 호수도 물이 말라 한 길은 내려가야 수면입니다.

물 위로 아침 햇살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고 호수 깊은 곳에서는 물닭 여러 마리가 분주히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떠다닙니다. 약병아리보다 조금 더 큰 물닭은 몸체가 둥글고 까만색에 주둥이 위쪽 이마에 선명한 흰색이 있어서 눈에 잘 띕니다. 몽실몽실한 게 앙증맞고 귀여우면서도 똘똘하지만 야생조류여서 겁이 많아 사람이 근처에 다가오는 걸 싫어합니다. 철새인 물닭이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머물고 있어 텃새나 마찬가지입니다. 낚시터 마루판도 물이 빠진 만큼 내려가 있더군요. 아무도 없는 마루판 위를 디뎌 봅니다. 인기척을 듣고 놀란 물닭이 푸드득 대지만 도망은 가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는 겁니다. 살펴보니 이게 왼 변인가요. 버려진 낚싯줄에 엉켜 제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더군요. 얼마나 오랫동안 발버둥치며 괴로웠겠어요. 썩지도 않는 낚싯줄에 꽁꽁 묶여 지난밤을 꼬박 새웠을 물닭이 치근하고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영락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엉켜있는 낚싯줄을 풀어 주려고 엎드려 줄을 잡아 당겨봅니다. 물닭은 내가 해치려는 게 안인가 해서 날개 짓을 해 대며 도망가려 합니다. 날개 짓에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에 튀깁니다. 낚싯줄을 들어 올려보니 이럴 수가 있나요, 낚싯줄은 두 다리에 칭칭 감겨있고 줄은 다시 목을 감아 날개까지 묶여있는 겁니다. 사람도 이 정도로 묶여 있다면 꼼짝없이 죽고 말 것 같았습니다.

물닭은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야단이 났습니다. 주둥이로 내 새끼손가락을 물질 안나, 발버둥 치질 않나, 날개를 푸드득 대며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다리와 목을 엉켜 매고 있는 줄부터 끊었습니다. 낚싯줄은 가늘고 질겨서 원만해서는 끊어지지도 않습니다. 왼손으로 물닭의 두 다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만 엉킨 줄을 풀어 주려고 했더니 너무나 요동치고 발광을 해 대서 도저히 풀어 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발버둥을 치든지 말든지 나는 나대로 줄을 끊어야 했습니다. 먼저, 낚싯줄을 끊어 두 다리를 자유롭게 해 놓고 이번에는 목에 감긴 줄을 끊어 목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날개에 엉켜져 있는 줄마저 풀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목에도 발에도 못다 풀어준 줄이 남아 있는데 물닭은 가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성화에 못 이겨 놓아 주었더니 쏜살같이 내 달려 갈대숲으로 사라집니다. 무릎을 일으켜 젓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았습니다.

아마도 전생에 물닭이 나를 살려 주었던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이 금세 오지는 않더라도 화가 저절로 멀어진다.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가 금세 오지는 않더라도 복은 저절로 멀어진다."

일산 전철역 벽에 걸려 있는 풍경소리에서 읽은 글귀가 떠오릅니다. 물닭이 낚시 줄에 얽매여 꼼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현대문명 속에서 살아가려면 알게 모르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무선 통신망이, 전파가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게 안인가 여겨집니다. 보이지 않는 인터넷 전파, 손에 늘 들려있는 스마트 폰 전파, 집에 들어서면 틀어야 하는 LED 전파, 차를 타면 들어야 하는 라디오 전파 이 모든 파장이 나의 눈과 귀와 손, 발을 묶어 놓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전파가 눈에 보이는 거미줄 같지는 않지만 낚시 줄처럼 길게 다가와 내 몸을 뱅뱅 돌면서 결국 묶여지는 건안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느낌은 직감으로 뇌리를 스쳐 가기도 하고 건강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순간적 이나마 깜짝 놀라게도 합니다.

물닭이 낚시 줄에 엉켜 있듯이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파에 온 몸이 둘둘 감기고 얽어 매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이도 샤봇 호수에는 얼마간의 전파나마 차단되어 있어서 스마트 폰도 안 터집니다.

물닭의 낚싯줄을 내가 풀어 주었듯이 나를 동여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선들은 호수가 풀어주고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호수가 고맙다는 느낌이 듭니다. 반환지점을 돌아 다시 오던 길로 갑니다.

올 때도 그랬듯이 갈 때도 밝은 햇살이 호수 물결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합니다. 물결 따라 반짝이는 은빛 비늘은 다이아몬드를 한 주먹 뿌려 놓은 것처럼 빛나 보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햇살이 호수에 널리 퍼져 있고 나는 햇볕을 흠뻑 받으며 걷고 있습니다. 흔하디 흔한 햇볕이 오늘처럼 몸과 마음을 따듯하고 훈훈하게 녹여준 날은 없었습니다.

전파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요.

햇볕을 받으며 걷는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요.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행복과 사랑과 평화를 만끽하는 겨울날 아침입니다.

▶수상소감

수필 가작으로 선정된 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변변치 못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리며 신인 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해 주시는 미주 중앙일보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그동안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지난날들과 써야만 하는 참기 어려운 욕망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여겨집니다. 미력이나마 동포사회에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글을 써 보겠습니다. 상금은 샌프란시스코 프시리오에 세워질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기금 모금에 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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