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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시·시조 부문-가작] 고추꽃 피었네

강남옥

흙에서 먹거리 소출 못 내면

죄스러워지는 종자가 한국 사람

밥풀 뜨는 기먹물로 남새밭 일구던 여인의 딸

미국 동부 외곽 허름한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흙 거름 채워 남새밭 일구는 오월

공중에 뜬 빨갛고 노랗고 파란 화분

화초려니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모를 테다

거기, 볕 잘드는 공중 남새밭에

조선 고추 들깨 상추 부추 쪽파가

이 악물고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



화분이 모자라 고추 들깨 함께 심긴 놈들이

널럴히 화분 하나씩 차지한 놈들보다

더 모질게 굵어간다

사람이든 푸새것이든 결손이 거름 되는지

미국 생활 20년 냉랭한 본토박이들 틈

이 악물고 뿌리 설 내린 날 보는 듯 아프다

화분 좀 더 사고, 흙거름 좀 더 사서 옮겨 심는데

살아남겠다고 뻗은 뿌리 엉긴 게 장난 아니다

이 죄 없는 것들 갑자기 오장육부 편해져

시름대지나 않을지 걱정 보탠다



먹거리 푸새 꽃도 손 타면 정드는지

손톱만한 고추 꽃 하얗게 핀 것 보며

요놈들 보래, 이 올된 놈들, 발랑 까진 것들

오월 가기 전에 고추 따 먹겠네

사람 보다 나은 놈들

들여다 보는 눈이 매워진다

▶수상소감

재외동포로 살면서 자주 하고 듣는 소리가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다민족 공동체에서는 민족 정체성이, 사회적 역할 분류에 있어서는 사회적 정체성이, 성별 구분에 있어서는 성적 정체성이 개인을 규정한다. 그리고도 다른 여러 정황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글을 쓰는 것은 내 존재의 총체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라 말하고 싶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것은 즐겁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이전에 그냥 내 몫이다. 글로써 소통하지 못하고(않고) 살아온 도미 이후의 내 세월 또한 나는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숙제를 하지 않고 잠드는 뻔뻔함 같은 느낌을 견딜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나만큼 바쁜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오해 속에서, 생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저물고 있다는 서글픈 인식 속에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위로를 주신 미주중앙일보에 감사 드리고 심사하신 분들의 혜안을 비켜가지 않은 내 작품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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