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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교회] '회개'를 외치지 못했던 이유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3심'이 생긴다고 한다. 욕심, 의심, 근심이다.

과연 이는 늙어가면서 생기는 마음일까. 젊어서는 젊음과 인격으로 '3심'을 제어했지만 몸과 마음이 늙으면서 통제를 못 해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3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3심' 중에서도 욕심이 가장 큰 골치다.】〉〕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을 물론 타인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

요즘 세상의 손가락질 받는 교회 대부분은 담임목사의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 한국 교회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한국 기독교가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소리에 반론을 펼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언론을 통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의 민낯이 낱낱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왜 주일 설교에서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는지, 왜 십자가의 삶이 강조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죄짓고 있는 목사가 어떻게 회개를 설교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 기독교의 전성기는 평양 대 부흥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신사참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연 몇 명의 목사 그리고 몇 개의 교단이 신사참배에 동참했을까.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장로교는 1938년 27차 장로회총회에서 정식으로 신사참배를 하도록 결정했으며 이에 반대했던 주기철 목사를 면직시켰다. 한국 기독교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한경직 목사도 신사참배를 했었노라고 고백했으니 당시의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교단이 나뉘고 분열되기 시작한 것도 신사참배 이후의 일이다. 리더들이 순교로 절개를 지켰었더라면 오늘 우리 기독교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집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형이 참거나 어른이 참는다. 그러나 교회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목사가 참는 법은 거의 없다. 바울은 싸움이 일어난 고린도 교인들에게 법정으로 가지말라면서 "여러분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주지 못합니까(고전6:7)"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동안 소송을 당한 담임목사들은 성경대로 불의를 당하거나 속아주기는커녕 철없는 동생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고 코피를 터뜨렸다. 승리는 했지만 과연 그게 승리였을까.

목사들의 영적 수준이나 인격수준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노회나 총회이다. 목사들인지 시정잡배들인지, 싸움을 하러 모인 곳인지 주님 일을 하러 모인 곳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여행사 직원들이 가장 통솔하기 곤란해 하는 사람들이 목사들이란다. 식당 직원들이 손꼽는 무례한 손님 일 순위가 목사들이다. 그러면서도 목사들은 주일날 순종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저주받을까봐 그 누구도 목사를 향해서는 선뜻 회개하라는 말을 못한다. 목사는 '기름 부음 받은 구별된 거룩한 종'으로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 기름 부어 구별한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왕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일 뿐이다. 실체가 이미 오셨으므로 더 이상 기름 부음의 권위와 권세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름 부음의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성경에 역행하는 사람이다.

애꿎은 평신도 잡지 말라. 목사가 변하지 않으면 교회는 소망이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것은 상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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