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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어머니의 도시락

귓불 끝이 빨간 고추 끝이 되도록 추운 날도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뛰쳐나갑니다. 눈이 오는 날도 운동장은 아이들의 발자국 아래 얼굴을 드러내고 맙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물장난을 치러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혹여 장하게 비가 오면, 교실이 운동장이 됩니다. 뜨거운 뙤약볕도 아이들을 막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부시간이 아닌데도 이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책상에 궁둥이를 붙이게 하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의 도시락입니다. 총천연색 손수건에 꼼꼼히 묶인 도시락은 여름에는 햇살을 피해 서랍과 가방 속에 은신하고 겨울이면 난로 위에 양은 엉덩이를 비비며 버젓이 눌러앉아 자리를 꿰차곤 했습니다. 온 교실을 뒤흔들던 김치찌개의 향기는 말 그대로 고문이었습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도시락을 열 때면 기대와 긴장이 엇갈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실에 퍼지던 수많은 냄새 속에는 어머니 냄새도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뚜껑 아래에 옴짝할 틈도 없이 가지런히 줄을 선 밥알에는 한 톨이라도 더 주시려는 어머니의 손길이 꾹꾹 담겨있었습니다. 철없이 반찬 자랑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도시락 뚜껑이 열리면 어느새 친구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매일 별로 달라지지 않는 메뉴였는데도, 도시락을 여는 시간은 어쩐지 새로웠습니다. 도시락을 잊고 갈까 챙겨주시며 뒷꼭지에 대고 학교 늦겠다고 채근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겼기 때문이겠지요.

그리 얼마 되지도 않은 옛일이지만 어려운 사정에 도시락 대신 물배를 채우던 친구들도 간혹 있었고, 아이들은 알면서 모르면서 자기 밥을 친구 배를 위해 내놓았습니다. 도시락통 속으로 불쑥 내밀어 진 젓가락을 치우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마음이었으니까요.



자식을 아끼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달걀 부침을 밥 아래 깔아 두시고, 어머니 마음을 자랑하고 싶은 아이는 그 사랑을 꺼내어 모두와 나누었습니다. 줄어드는 밥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밥을 쳐다보며 즐겁게 숟가락을 들던 우리는 도시락 앞에서만큼은 가슴을 바짝 타게 하는 숫자의 경쟁도, 숨쉬기 어렵던 공부의 짐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차곡 하게 쌓여 우리를 쳐다보는 밥알들이 모두 어머니의 눈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텅 비어가던 도시락은 더욱 깊어질 어머니의 사랑을 담기 위해 내일을 준비합니다. 집으로 가는 가방 속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추며 노래하던 도시락처럼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노래가 쌓이고 사랑이 쌓입니다.

시간은 흘러 어머니의 도시락은 없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오늘도 내 인생의 도시락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도시락을 열어 예전처럼 우리를 채우고 다른 이와 나누어야겠습니다. 오늘 집으로 가져갈 텅 빈 도시락에는 더 깊어지는 사랑이 내일을 위해 담길 것입니다.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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