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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52] 대일전쟁①…임정 비행학교 출신 다수 2차대전 참전

비행학교 교관지냈던 이초 제2차 세계대전 발발하자
미전략정보국 요원에 배속, 훈련중 뛰어난 능력 보여줘
2개월만에 이등병→중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가 1921년 날개를 접은 후에도 이곳 출신 조종사나 관계자들은 임시정부 요인으로 또는 민간인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기도 하고 직접 대일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대일전쟁과 관련해 그나마 정확한 기록이 비교적 많이 확인되는 인물이 이초이다.

레드우드비행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에서 비행교관까지 지냈던 이초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대일전쟁에 나설 기회를 갖게 됐다.

이초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가 진주만 기습 1주년이 되는 1942년 12월 7일 미국 전략정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 요원이 됐다. OSS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발족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사실상 전신이다.



이 무렵 이후 이초에 대한 미군 기록은 1945년 1월 OSS 문서에 다시 등장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초의 당시 신분은 민간인으로 OSS가 한반도에서 비밀첩보 임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이초를 미군에 입대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른 OSS 문건은 "OSS가 대일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정보 수집을 위해 이초를 한국으로 파견될 예정인데, 통상적 입대절차를 따르면 정보가 누설될 위험이 있으므로 통상적 절차를 생략하고 워싱턴DC 모병소에서 선서만 하게 한 후 OSS로 직접 출두하도록 해주면 다음은 OSS가 알아서 조치할 것"이라는 요지로 쓰고 있다.(1945년 1월 6일자)

한 때 폐결핵을 앓기도 했던 이초는 이 무렵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돈도 잘 벌고 있었으나 미군의 요청을 받고 대일전쟁에 참전할 기회가 주어지자 4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미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했다.

입대 이후의 이초에 대해서는 OSS 시절 현지작전부대(FEU: Field Experimental Unit) 부부대장으로서 그의 상관이었던 플로이드 프레이지이 소령이 이초를 중사에서 상사로 특진시켜줄 것을 요청하는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초는 1945년 1월 11일 미 육군에 입대했고 바로 다음날 OSS로 배속돼 4개월간 특수훈련을 받았다. OSS 훈련의 목적은 적지의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요원들을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초는 확고한 용기와 뛰어난 리더십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이초는 그 사이 중사로 진급했다. 이초는 현재 현지작전조 1개의 조장을 맡고 있는데, 처음부터 그에게 그런 역할을 맡길 계획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육 기간 중 그가 보여준 능력에 따라 원래 계획을 수정했다. 이초는 한국어와 영어에 아주 능통하며 중국어와 일본어도 꽤 잘한다. 그는 인품과 나이 덕택에 한국인들 사이에서 영향력도 크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을 받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초는 나이에 불구하고 체력도 매우 뛰어나 젊은 대원들에 비해 체력이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보다 우수함을 여러 번 보여줬다. 이초는 애국심 때문에 수익이 높은 사업도 놔두고 이 위험한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현재 이초가 속한 작전조를 편성할 때는 실제로 누구를 조장으로 삼을지 미정이었으나, 훈련 과정을 통해 드러난 자연스럽고도 논리적인 결론은 이초가 조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초가 속한 작전조에는 하사 1명과 중사 1명이 더 있다. 아이플러(Eifler) 대령은 작전조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이초를 상사로 진급시켜 조장에 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서는 이초가 이등병으로 입대한지 두 달도 채 안된 1945년 3월 2일 중사(Staff Sergeant)로 진급, 미군 당국이 이초에 대해 이미 대단히 높이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OSS 당국은 문서로 제출된 이 건의를 받아들여 1945년 7월 1일 이초를 상사로 진급시키고 이초를 비롯한 한인들을 한반도에 투입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것이 유명한 '냅코작전'(Napko Project 또는 Napko Plan)'의 한 단면이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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