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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51] 날개를 접다 ②…오늘날 한국 공군의 모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공군력을 앞세운 독립전쟁이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창설된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가 1921년 역사 속으로 날개를 접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최대의 재정후원자였던 김종림의 비즈니스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종림이 1920년 10월 100년 만에 처음이라고 불릴 정도였던 폭풍우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으나 이듬해에도 같은 규모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상식을 뛰어넘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였으며 조국 독립이라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있던 김종림,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현재 국방장관)으로서 불굴의 투지를 갖고 있던 지도자 노백린 등이 이 시점에서 비행학교/비행대에 대한 꿈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임은 쉽게 짐작된다.

김종림이 총재로 있던 '비행가양성사'는 1921년 4월 폐쇄됐으나 임시정부는 1921년 7월 '비행가양성소' 출신으로서 국제항공연맹으로부터 조종사자격증을 획득한 박희성과 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명하면서 비행대 양성에 대한 의지를 견지했다.



임시정부가 박희성과 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관시킨 것은 단순히 그들의 희생과 노고를 치하하는 상징적 조치가 아니었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대 양성이라는 임시정부의 계획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비행가양성사가 폐쇄된 이후이며 임시정부가 박희성과 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관시키기 직전인 1921년 초여름에도 '윌로우스 데일리 저널'(Willows Daily Journal)은 1921년 6월 1일자에서 "퀸트에 있던 한국인 비행장을 다시 열기 위해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는 언급이 오늘 있었다."고 보도했다. 

신한민보 역시 1921년 5월 19일, 5월 26일, 6월 9일, 8월 25일자를 통해 비행학생 지원을 위한 재미동포 기부자 명단을 계속 게재, 재미동포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신한민보는 당시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정신적 지주였으며, 독립전쟁에 있어서도 공군력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이 비행학교/비행대의 탄생과 유지에 사실상 모태가 됐던 언론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를 위한 최대의 재정후원자였던 김종림은 1921년 들어서도 한 해전 폭풍우로 입었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종림은 이후 쌀농사를 포기하고 서비스 업종을 주로 하는 윤년식산회사, 농산물 유통업체인 리들리 건제회사, 북부인흥정농민사, 간장업체인 중미식물회사를 운영하는 등 끊임없이 재기를 시도했지만 그의 비즈니스는 옛 영화를 회복하지 못했다. 도미 10여년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난세를 헤치며 쌀농사로 거부를 일궈 '백미대왕'(Rice King)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김종림으로서는 쉽지 않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김종림의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최대의 재정후원자를 잃은 비행학교/비행대 역시 다시 날개를 펴지 못했고 이와 함께 임시정부의 공군 양성 계획도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비행학교/비행대 관계자들은 훗날 독자적으로 미군이나 중국군으로 대일전쟁에 참전하거나 민간인으로 또는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홍윤정 박사에 따르면, 임시정부는 이후에도 독자적 비행대를 편성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943년 8월 공군설계위원회 조례를 공포해 공군을 창설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1945년 3월 미국과 공조해 한국공군 창설 계획을 수립했으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불발됐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줄기찬 공군 창설 노력과 정신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 계승돼 오늘날 한국 공군의 모태가 됐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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