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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내는 것이 곧 희망입니다

취재현장서 떠올려 본 세월호 참사

이번 주, 4월 말~5월 초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궂었습니다. 급작스럽게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렸네요. 지금 쯤 꽃잎을 활짝 펴고 거리와 공원 곳곳을 수놓아야 할 벚꽃도 드문드문. 꽃이 핀 나무는 한 두 그루씩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이제 막 채비를 마친 새순들이 예상치 못한 급 추위에 행여나 얼어붙진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지난 달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아이들도 그랬던가요.

아직 인생의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고등학생들이 우리의 새싹들이 추운 바다에서 스러져갔습니다. 뉴욕의 날씨도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슬퍼하는 것일까요.

주말이 온통 세월호 사건의 비극으로 물들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입니다. 뉴욕과 달리 한국에서는 벚꽃이 일찌감치 피고 졌다던데… 꽃들도 이 참사를 피해가는데… 어찌 이런 일이 발생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이어질 테지요. 며칠 후엔 뉴욕에도 벚꽃이 활짝 필 것이고 사람들은 버선발로 뛰쳐나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아낙네의 마음마냥 밖으로 또 밖으로 달려나갈 것입니다.

많은 이민자 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진도로 안산으로 당장 달려갈 수 없는 현실을 잠시 옆으로 놓고 보니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잊지 않는 것이었죠. 잊혀질 게 두려워 기억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문화와 레저라는 어떻게 보면 비극적인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취재 현장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기억해내는 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희망을 살짝 나눠봅니다.

2014년 4월 26일-세월호 침몰 11일 째

루스벨트아일랜드 취재를 다녀왔다. 유난히 벚꽃이 짜게 구는 올 봄 혹시나 그 곳에 가면 꽃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F열차를 타고 도착한 그 곳엔 벚꽃이 피기도 전에 배꽃이 활짝 펴 꽃잎을 날리고 있다. 꽃잎도 어느덧 떨어지고 점점 푸른 이파리들이 나무를 점령해간다.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산책로에 꽃나무가 줄줄이 서 있다. 뒤로는 퀸즈보로브리지가 곧게 서 있다. 남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나오는 '포 프리덤스 파크(Four Freedoms Park)'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포 프리덤스 파크는 섬 남쪽 맨 끝 세모꼴 공간을 메모리얼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포 프리덤스' 연설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져 2012년 오픈했다.

잔디밭을 따라 길게 드리워진 가로수 사이를 걷다보면 탁 트인 이스트리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간간이 뱃소리 새소리가 들린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르짖은 '포 프리덤'이 공원에 적혀있다. 언론.의사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세월호 사건과 이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특히 '공포'라는 단어에서 한번 더 곱씹게 됐다. 루스벨트의 연설에서는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 의미의 공포지만 침몰하는 배 안에서 느꼈을 희생자들의 공포가 생각났다. 과연 우리는 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걸까.

2014년 4월 28일-세월호 침몰 13일 째

올해도 그 때가 찾아왔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루프 가든을 개방하는 날이다. 일반 공개에 앞서 미디어를 위해 '미리보기' 행사가 열렸다.

메트박물관 루프 가든은 특별하다. 센트럴파크 동쪽 한가운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게다가 이렇게 매년 다른 아티스트를 초청해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곤 한다.

지난해의 경우 임란 쿠레시의 '바닥 그림'이 2012년에는 토마스 사라씨노의 '거울 정글짐'이 2011년에는 스탄 형제의 '대나무 놀이터'가 이 곳을 장식했다.

올해는 댄 그래햄이라는 설치 작가가 팔을 걷어붙였다. 녹색 인조 잔디로 바닥을 깔고 S자 커브 유리를 한 가운데에 놓았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이 설치 작품 가까이 다가가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유리의 굴곡을 통해 나의 모습이 옆 사람의 모습이 그리고 뒤에 있는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비친 것.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주변을 내 배경을 보게되는 이색적인 전시였다.

친구들과 구명조끼를 나눠 입으며 차분히 안내방송의 지시를 따르는 단원고 학생들의 영상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굳이 작품을 통해 보지 않아도 서로를 볼 수 있는 그 순수함이 부러웠고 안타까웠다.

아이들 중에는 이렇게 뉴욕에서 메트박물관에서 일하고 또 미술가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었을텐데…. 꿈 많은 희망덩어리 수백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이번 사건을 더더욱 잊을 수 없다. 파란 하늘이 꼭 파란 바다처럼 보였다.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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