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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박재욱(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서해 노을 위에 시를 쓰다'.

진도 앞바다 침몰선인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이 약 10년 전 제주투데이와 인터뷰한 기사의 제목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 탄 배가 오키나와 부근에서 뒤집혀 일본 자위대가 구출해줬는데, 그 사건 이후 다시는 배를 타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생각이 없어져 지금까지 배를 타고 있다면서, 이제는 "승객의 행복에서 위안을 얻는다. 오늘도 내일도 배와 함께할 것"이라며 "특히 청소년들이 열심히 일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침몰선에서 구조된 처절한 경험과 승객들의 안전과 행복을 들먹이며, 청년들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갸륵한 마음을 시를 쓰듯 서해의 노을 위에 그렇게 썼다. 그런 그였다.

마도로스! 한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했던 적이 있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금빛 띠를 두른 모자와 하얀 제복, 손에 든 파이프와 잘 다듬어진 구레나룻은 마도로스의 이미지에 카리스마를 한층 더해 주었다.



한편 '마도로스'는 망망한 바다 위에서 그리운 이들에게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보내는 서정과, 때로는 거친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고 운행하던 배가 난파될 순간을 맞이하면 모든 탑승자들이 안전하게 탈출할 때까지 자신의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시먼쉽(seamanship)의 감동적인 서사가 오버랩되며, 낭만적이고 강인한 사나이로, 의리에 죽고 사는 멋진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한 마도로스의 이미지는 선장 이준석에 의해 그야말로 무참하게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퇴선 명령을 몇 분만 일찍 내렸어도 대부분의 희생자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안심하라. 선실에서 기다리라"고 승객들을 묶어둔 시간은 오전 9시. 선장 일행이 자기들만이 아는 비상구로 도망간 시간은 대략 9시 50분이었다. 퇴선 방송은 10시 15분에 나왔다고 하니, 그때는 이미 탈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가 버린 상태였다. 선장일행은 제일 먼저 도착한 구명정을 타고 살아남았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결국 희생자들의 죽음은 살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마저 박탈된 채 강제된 참담한 죽음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가 짙은 죽음으로 반인륜적 패덕의 사건이며, 그 본질에서 한반도 유사 이래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난다. 꽃들은 채 피지도 못한 수백의 꽃봉오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거대한 납덩어리처럼 무겁고 음울하게 펼쳐진 바다 위로, 꽃 사리들 되어 난 분분 헤매고 있을 저들아!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어느 신학자는 사랑(아가페)은 용납할 수 없는 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하여 변화 시키는 에너지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대저, 나라 안팎으로 일렁이는, 아! "종교보다도 깊은 거룩한 분노"를, 정의 회복을 위해 타오르는 저 분노의 에너지를 대체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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