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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37] 비행학교/비행대 창설 (10)1920년 3월1~19일 사이 어느 날 사실상 개교

한국 학계의 몇몇 문헌들이 1920년2월20일을
사실상 비행학교 개교일로 지목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북가주 윌로우스(Willows) 일원에 설치한 비행학교는 1920년 3월 1~19일 사이 어느 날 사실상 문을 열었으며, 공식 개교일은 1920년 7월 5일이다.

임정이 정확히 언제 이 비행학교를 사실상 개교하고 생도들을 받기 시작했는지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이 사안을 다룬 한국 학계의 몇몇 논문이나 서적이 이 비행학교의 사실상 개교일을 1920년 2월 20일로 지목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개교일과 1920년 2월 20일이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자료는 같은 날짜 '윌로우스 전보'로, 이로부터 나흘 후인 2월 24일자 신한민보의 '한인비행학교 설립'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인용돼 있다.

이 기사는 제목이 '한인비행학교 설립'으로 돼 있지만 기사가 인용하고 있는 전보의 내용은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 지방에 수천 에이커 농사를 하는 한인 재산가들은 윌로우스 근처에 한인비행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는데…(중략)…학교를 임시로 쓰기 위하여 그 지방 학무감독에게 청원하였다."고 돼 있다.

그러므로 이 전보는 '2월 20일 또는 그 전에 이미 당시 재미한인 재력가들이 비행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 실제로 비행학교가 이날 설립됐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같은 전보는 위 내용에 곧 바로 이어 "노백린 장군이 교육을 맡고 김종림 씨가 설비에 전력하는 중이라는 통신도 있다"면서 "그 설비가 다 마치는 대로 곧 시작하겠다더라."고 끝을 맺고 있다. 따라서 이 전보는 그 시점에서 개교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아 아직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았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비행학교의 사실상 개교일과 노백린군단 창설일을 같은 날짜로 보는 것이 한국 학계의 정설임을 감안해도 위와 같은 결론은 마찬가지다. 노백린군단은 노백린이 독립전쟁을 위해 이 무렵 윌로우스에 창설한 군단으로, 실체적으로는 비행학교와 같은 존재다.

또 다른 자료는 '윌로우스 데일리 저널'(Willows Daily Journal) 1920년 2월 19일자다. 2월 20일자 윌로우스 전보의 "김종림씨가 설비에 전력중이라는 통신도 있다"는 내용에 등장하는 통신이 이 신문보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이미 많이 진행된 비행학교 설립준비 내용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나 개교일자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노백린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는 '윌로우스 데일리 저널' 3월 1일자 역시 비행학교 설립을 여전히 미래 시제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비행학교/비행대 설립을 위한 준비가 그 해 2월 말까지 많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나 그때까지 문을 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신한민보 1920년 3월 19일자는 '비행학교 생도의 집합'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비행술 연습을 받기로 결심한 건장한 청년 24명이 집합하였는데…"라고 쓰고 있다.

따라서 이 비행학교/비행대가 사실상 창설된 때는 1920년 3월 1~19일 사이 어느 날로 보는 것이 옳다.

신한민보는 비행학교에 처음 입교한 24명에 대해, 이들의 이름이 최명길, 김태선,박유대,조기초, 최능익, 박대일, 신영철, 조종익, 정리용, 정흥성, 정몽룡, 홍종만, 조진환, 신형곤, 임상희, 이영기, 김전, 손리도, 이도선, 박희성이라면서 나머지 4명의 성함은 미상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가운데 정리용은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적 경험을 얻기 위해 영국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박희성은 훗날 이용근과 함께 임시정부에 의해 비행장교로 임관돼 수천 년 한국사에서 우리 정부가 임명한 비행장교 1호가 되는 인물이며, 조종익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일본과 싸우기 위해 미군에 들어갔으며, 이영기는 그 아들이 미군 파일럿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게 된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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