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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홀로 키운 딸 … 교사 돼 아빠 모신다 했는데"

눈물마저 마른 가족들
시신 도착하면 200여 명 몰려들어
결혼 앞둔 동갑 연인 함께 하늘로

전남 진도 여객선 침몰 사흘째인 18일.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은 아침부터 북새통이었다. 진입로에서 선착장 남쪽 끝 방파제까지 200여m의 부두에는 실종자 가족 200여 명이 몰렸다. 가랑비에 온몸이 젖은 줄도 몰랐다. 서로 말없이 그저 먼 바다만 바라봤다. 방파제 한쪽에 설치한 임시천막을 들락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가족도 있었다. 먼 바다를 향해 아들딸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잠수부가 침몰한 세월호 내부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는 “제발. 살아있어야 할 텐데” 하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오후 1시30분쯤 해경 고속정이 시신 3구를 인양해 항구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고속정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해경이 시신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서다. 일부 가족은 “왜 현장에서 확인을 못하게 하느냐”며 항의했다.

 김진철(56)씨는 “혼자 키운 딸 소연이를 꼭 찾아야 한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10년 전 공장에서 근무 중 사고로 손가락 한 개를 잃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막노동을 하며 소연이를 키웠다는 김씨는 “딸은 반에서 1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며 “교사가 돼 하루빨리 아빠를 모시겠다고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도체육관에 모여 있는 가족들은 탈진한 모습이었다. 실종된 아들딸에 대한 오열이 며칠째 계속되면서 눈물까지 마른 것 같았다. 한 부모는 “어제만 들어갔어도 살았을 텐데… 불쌍해서 어떻게 해”라며 울먹였다. 이지영(42·여)씨는 “아이들이 추운 곳에서 죽어 가는데… 구조 중이라는 말만 하는 저들은 도대체 뭐냐”고 했다. 수십 명의 가족들은 체육관 단상에 있는 대형 TV 앞에 모여 구조 현장 상황을 지켜봤다. TV는 가족들이 17일 체육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해 설치된 것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지 두 시간 만이었다. 김석균 청장 등 해경 관계자들이 1시간~1시간30분마다 구조 상황을 브리핑했다. 김정희(38·여)씨는 “수백 명이 배 안에 갇혀 있는데 10명도 안 되는 잠수부만 투입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통령이 왔다갔는데도 왜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진도체육관에서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질타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가족들은 대표가 읽은 호소문에서 “국민 여러분,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해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고 직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모두 구조됐다는 발표를 듣고 현장에 왔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 했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안타까운 사연도 잇따르고 있다. 사망한 여객선 승무원 정현선(28)씨와 아르바이트생 김기웅(28)씨는 연인 사이로 확인됐다. 선상에서 불꽃놀이 진행 아르바이트를 해온 김씨는 4년 전 정씨를 만나 사랑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어머니(59)는 “아들이 봄에 신을 운동화를 사다준다고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학교를 졸업하는 올가을쯤 결혼시킬 계획이었는데 …”라며 오열했다.

 18일 숨진 채 발견된 정종현(71)씨는 자전거동호회원 5명과 제주도로 하이킹을 떠났다가 변을 당했다. 5명 가운데 1명만 구조됐다. 정씨 부인은 “사고 당일 아침에 전화로 남편에게 ‘식사 잘했느냐’ 했더니 ‘배가 갑자기 기울어진다’고 말해 불안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사망자는 신원 파악이 잘못돼 유가족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단원고 김민지(17)양으로 알려졌던 시신은 18일 김양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양의 부모는 “처음에는 딸인 줄 알았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인양된 이 시신은 안산 한도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목포기독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시신은 검시관들이 확인을 거쳐 부모들이 원하면 안산으로 옮긴다.

 한편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안산 단원고 학생 이모군의 빈소를 방문했다가 격한 항의를 받았다. 서 장관은 이날 오후 6시쯤 수행원과 함께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군의 빈소를 찾았다. 한 수행원이 유족에게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귓속말을 건넸다. 유족은 “어쩌란 말이냐. 장관 왔다고 유족들에게 뭘 어떻게 하라는 뜻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 장관은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바로 빠져나갔다.

진도=위성욱·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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