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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야채 호빵을 먹을걸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앵두나무가 있던 옛날 기와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그 집 앞에 있던 공터는 항상 아이들로 북적댔고 아이들 고함과 웃음소리로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시간을 죽이지 못해 방황하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하듯 공터에 모여 비석 치기를 했습니다.

공사장에서 주운 자갈을 세워 놓고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손을 떠난 돌은 다윗의 돌팔매와는 달리 맞은 편 구멍가게 창문을 쨍그랑하며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놀이는 같이 하지만 꾸중은 혼자 듣는 것이 우리의 의리였습니다. 미간을 팔자로 모은 가게 주인이 어떤 녀석이냐고 문을 거칠게 열며 나오자 한없이 넓어진 공터에는 달랑 혼자만 남습니다. 그리고 매 같은 주인의 눈과 마주치자마자 친구들이 풀어낸 흙먼지 뒤를 쫓아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그날 이후 공터는 남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은 공터로 통합니다. 학교에 가려 해도, 심부름 때도, 친구 집에 놀러 가려도 공터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숨 한번 쉬면 갈 길을 멀리 빙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박하고는 공터를 지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침 가게 앞에 나와 호빵을 찜통에 넣으시던 주인아저씨와 딱하고 마주쳤습니다. 덜컥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 지나려는데 아저씨가 불러 세우십니다. "야 너 윗골목 김 집사 아들이지?". 꿈질하며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불호령이 날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내민 손에 막 찐 호빵이 들려있었습니다. "이거 하나 먹으렴". 이 아저씨가 모르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온몸을 스치고 오그라들던 양심에 갑자기 털이 나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어 들어가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손이 호빵을 움켜쥐고 가게를 벗어나는 데 발걸음은 멀어질수록 빨라집니다.

호빵을 손에 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리둥절한 친절에 아이의 머리는 너무나 복잡해집니다. 나를 다른 아이로 보셨다는 생각이 스스로 그럴듯해지자 아이는 때아닌 횡재를 즐기기로 합니다. 그리고 공터는 한 아이를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깨어진 유리창은 물론이고 죄송하다 시며 가게 주인에게 적지 않은 돈을 어머니께서 몰래 물어주셨던 사실 말입니다. 아이가 잘못을 뉘우쳐 빌기도 전에, 도망 다니고 숨느라고 공터를 잃었고, 기쁨과 자유도 함께 잃었을 때 이미 어머니의 사랑이 아이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게 우리에게 왔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모르던 아이처럼 우리도 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에 앉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야채 호빵을 먹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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