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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뤼베크2> 바흐가 293마일을 걸어 찾아간 곳

뤼베크의 성모 마리아 교회(Marienkirche)에 가면 앉아 있는 악마(Der Teufel) 동상이 있다.
교회에 무슨 악마 동상이 있나 하겠지만, 이 악마에게 얽힌 재미난 전설이 있다.
먼 옛날, 교회가 지어지는 것을 본 악마는 건설을 방해할 목적으로 교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은 교회가 아니라 술집을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심했던 악마는 교회가 완성된 후에야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교회로 달려가고, 사람들은 교회 맞은편 건물에 술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악마는 그때부터 교회 옆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소의 한쪽 발과 사람의 한쪽 발을 가지고 있는 악마는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귀여운 모습이다.

청동으로 만든 악마 동상은 조각가 롤프 골러가 1999년에 완성한 것이다. 사람들은 악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고, 머리에 난 두 개의 뿔을 만지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세상에는 뿔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
성모 마리아 교회의 역사는 뤼베크 시가 1160년에 만들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나무로 지어진 성모 마리아 교회가 완공된 것은 1163년. 그 후 몇 번에 걸쳐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으로 혼합되며 두 개의 첨탑을 더했다.
이 교회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북스테후데가 활약하던 1668년부터 1707년 사이였다. 북스테후데는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음악가다.

당시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는 1646년부터 시작된 저녁음악회(Abendmusiken)가 있었다.
저녁음악회란 말 그대로 주일예배를 드린 후 저녁에 다시 모여 오르간 연주를 듣는 특별한 음악회였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속적으로 열리는 5주 동안의 연주회는 유럽에 명성이 자자했다.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북스테후데가 자신이 작곡한 음악들을 연주하는 음악회였기 때문이다.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 뤼베크를 찾은 음악가 중에는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요한 마테존,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그리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있다.
바흐는 아른슈타트(Arnstadt)에서 뤼베크까지 장장 472km(293마일)의 길을 걸어서 갔다.

37개의 마을을 지나야 겨우 도착하게 되는 뤼베크는 음악을 향한 열정이 뜨거웠던 바흐에게는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다.
바흐는 뤼베크에서 3개월이 넘는 기간을 지내면서 북스테후데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저녁음악회에서 연주하던 음악은 ‘BuxWV 47-Ich habe Lust abzuscheiden’ 등 고귀한 작품이었다. 바흐는 연주회가 열리는 날마다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는 바흐가 북스테후데의 영향을 받고 작곡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바흐와 북스테후데가 만났던 성모 마리아 교회도 전쟁의 아픔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1942년 3월 28일 밤부터 29일 아침까지 영국군 폭격기는 뤼베크 시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뤼베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공군이 공격한 독일 최초의 도시였다.

이 폭격으로 성모 마리아 교회를 비롯한 3개의 교회는 거의 파괴되고 말았다. 예배당 한구석에는 그 당시 파괴된 교회 종이 깨진 상태로 지금도 전시돼 있다. 기념예배당(Gedenkkappelle)으로 이름 지은 이곳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1985년에 다시 복원된 교회의 종은 아침예배 시간과 주일예배 시간에는 4번의 종을 울린다. 6번 울리는 날도 있다고 하는데 그 날은 예수승천일, 추수감사절, 종교개혁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7번 울리는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부활절, 새해, 오순절이다.
프레덴하겐 제단(Fredenhagenaltars)의 예수님 왼쪽 팔도 1942년 폭격에 잘려져 나갔다.
안트베르펜 뒤 쪽 제단(Antwerpener Retabel)은 1518년에 제작된 것이다. ‘최후의 만찬’ 조각품은 하인리히 브라벤더(Heinrich Brabender)가 1515년에 제작한 것이다.

왼쪽 아래 검은 쥐가 뿌리줄기를 갉아 먹고 있는 조각은 갑작스러운 불행을 경고한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16세기에 제작한 천문시계(Astronomische Uhr)도 설치돼 있다.
전쟁 당시 파괴된 천문시계는 1955~1967년 사이에 다시 복원시켰다.
베른트 노트케(Bernt Notke)의 죽음의 무도(Totentanz)라는 작품도 유명하다. 1463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죽음의 무도를 주제로 한 유명한 그림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2년 폭격으로 파괴된 후 1956년 다시 복제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죽음의 무도’를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죽음의 무도란 서양의 중세에서 유행했던 죽음을 주제로 한 도상(圖像)의 하나를 말한다.
중세 말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구 종교와 예술 전반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으며, 목판화, 벽화,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곳에 해골(죽음)이 등장하는 표현형식이 취해진다. 많은 음악가들 또한 죽음의 무도를 작곡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생상스의 작품이다. 바로 김연아 선수가 여러 경기의 쇼트 프로그램에 사용했던 음악이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은 교회 예배를 위해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파이프오르간이다.

수천 개의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음률의 장중함은 중세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악기였다. 성모 마리아 교회에도 두 개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하나는 56개의 레지스터와 4479개의 파이프가 있는 ‘죽음의 무도 오르간(Totentanzorgel)’, 다른 하나는 8512개의 파이프와 101개의 레지스터가 있는 켐퍼 오르간(Kemperorgel)이다.
두 개의 오르간 모두 북스테후데와 바흐가 연주했던 것이라면 더 좋았을뻔 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개의 오르간은 1968년(켐퍼)과 1985년(죽음의 무도)에 새로 제작된 것이다.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교회에서 먼 길을 힘차게 걷던 바흐를 생각했다. 그는 노력의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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