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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베를린6·끝>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베를린 대성당

보데 박물관을 나와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으로 발길을 옮겼다.
베를린 대성당 앞에 분수가 있는 정원은 루스트카르텐(Lustgarten)이다. 16세기, 궁전의 부엌 정원으로 만들어진 루스트카르텐은 ‘환희의 정원’이라는 뜻.
해가 반짝이는 날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망중한을 즐기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푸른색 돔형의 베를린 대성당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하지만 전쟁이 없었다면 본래 대성당의 모습은 더 화려하고 웅장했을 것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이 그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것이다.

슈프레(Spree) 강 건너편 카페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의 모습 또한 장대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장대한 외관보다 대성당 내부시설의 우아함이었다.
유럽의 대성당은 금빛 찬란한 화려함을 예배당의 특징으로 갖고 있기는 하지만, 베를린 대성당은 가톨릭 성당이 아니라 개신교인 루터교 교회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햇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돔 천장을 바라보게 된다. 돔 모자이크는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묘사한 것으로 50만개의 타일로 구성돼 있다.
중앙에는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에 하얀 비둘기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하얀 비둘기는 기독교에서 성령(성삼위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영)을 상징한다. 중앙 제단에는 아름다운 원형 스테인드글라스와 붉은색 대리석 기둥, 금빛으로 수놓은 장식이 황홀하다.



독일의 교회 또는 성당의 고급스러움은 그 어떤 나라의 건축물도 따라올 수 없는 우아함이 있다.

제단 옆으로는 113개의 레지스터와 7269개의 관으로 이루어진 독일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이것은 1905년 빌헬름 자우어(Wilhelm Sauer)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자우어 오르간’이라 부른다.
8개의 사암 기둥으로 둘러싸인 본당 예배실에는 4명의 종교개혁자와 그들을 도운 선제후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 첫째가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 마틴 루터(Martin Luter·1483~1546), 둘째는 루터의 친구이자 독일의 종교개혁자인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eheton·1497~1560), 셋째는 프랑스 출신의 제2 세대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1509~1564), 넷째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1481~1531)이다.
그 맞은편에는 프로이센의 알버트 공작(Duke Albert of Prussia)의 조각과 헤세의 영주 필립 백작(Philip I, Landgrave of Hesse),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요하임 2세(Elector Joachim II of Brandenburg), 그리고 선제후 프레드릭(Elector Frederick the Wise of Saxony)의 조각이 있다.

특히 선제후 프레드릭은 루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바르트부르그 성에 그를 은거시키고 그곳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전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는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사람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서있는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매우 특별할 것이다.
위를 보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되는 팔복(마태복음 5장)의 말씀이 적혀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Selig Sind Die Barmherzigen),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Selig Sind Die Reines Herzens Sind),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Selig Sind Die Um Gerechtigkeit Willen Verfolgt Werd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설교 강단은 고개를 들어야 겨우 바라볼 수 있는 아주 높은 곳에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은 영원함이로다(Des Herrn Wort bleibet ewiglich).
이곳에는 침례, 또는 결혼식을 올리는 ‘침례와 결혼예배당(Tauf-und Traukirche)’이 있다.
제단 뒤 장식 그림은 대 카를 베가스가 제작한 ‘성령의 강림(Die Ausgießung des Heiligen Geistes)’이다.
프로이센의 첫번째 왕,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in Preußen)의 황금빛 관도 보인다. 그 옆의 관은 프리드리히 1세의 아내인 왕비, 소피 샬롯테(Sophia Charlotte of Hanover)의 관이다.
지하 묘지(Gruft)에는 16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호엔촐레(Hohenzollern) 가문의 94개 무덤이 있다. 호엔촐레가는 1415년부터 1918년대 초반까지 약 500년을 이어온 독일의 왕가이다. 18세기 초반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버금가는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판타스틱 가도에 위치한 호엔촐레 성(Burg Hohenzollern)이 호엔촐렌가에서 지은 성이다.
베를린 대성당에서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은 270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돔 산책로(Kuppelumgang)다. 올라가는 중간에 설치돼 있는 건 마틴 루터와 종교 개혁에 참여한 사람들의 조각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마틴 루터다. 동판으로 제작된 것은 교회 정면에도 있다.
돔 산책로에 서면 루스트카르텐, 박물관 섬, 베를린 TV 탑 등 베를린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베를린은 또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빼놓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태 수난곡이 태어난 도시는 라이프치히였지만, 부활한 도시는 베를린이었다.
멘델스존은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의 징아카데미(Singakademie)에서 마태 수난곡을 지휘했다. 징아카데미는 1791년 파슈(Carl Friedrich Christian Fasch)가 창립한 합창 연구단체이다.
왕을 비롯하여 슐라이어마허, 하이네, 헤겔, 스폰티니, 첼터 등이 참석한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잠자고 있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대작은 이렇게 하여 세상에 공표된 것이다. 음악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자, 청중들은 뜨거운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글 사진: 곽노은
개장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월~토). 낮 12시부터 오후 8시(일)
예배 시간: 오전 10시(주일예배), 매일 오후 6시(저녁예배) 정오 예배(월~토)
입장료: 성인 7유로, 학생과 노인은 4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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