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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술 패밀리] 늘 곁에 선 예술 동지 "오래 함께 걸어갔으면…"

무용 평론가 이병임·화가 이병응씨 남매

"누이의 강인한 의지와 실천력에 놀라울 뿐"
"열심히 작품하며 전시하는 동생이 대견해"
내색 않고 도움…남매지간 뒤늦게 알려져


지난해 5월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지 2년만에 50여점의 작품을 그려 개인전을 열었던 이병응 선생(74)은 뒤늦게 시작한 그림그리기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낀다. 감사의 대상은 특별히 그의 곁에서 용기를 준 가족들. 그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개인전은 결코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서도 바로 손윗 누이인 무용평론가 이병임 회장(77·우리춤 보전회)의 따뜻한 격려는 그가 도예가에서 사진작가로 또한 화가로 계속 변신을 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제가 비즈니스(Lee's Pottery)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 가장 기뻐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던 사람이 누님이었습니다. 홍익대학에서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고 미네소타 주립대학으로 와 도자기 연구원으로 유학 생활을 했지만 그동안 비즈니스 하느라 창작에서 손을 떼고 있었으니 '같은 예술가의 길을 가려나' 기대했던 누나로서는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겠다니 활짝 웃으며 기뻐해 주더군요."

이병임 회장은 비즈니스맨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동생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뛸듯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저희가 8 형제예요. 그 중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은 이 동생과 저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유학까지 와 도자기 공예를 공부한 동생이 경영에만 매진하자 날개 한 쪽이 부러진 기분이었지요. 워낙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 작게 시작한 도자기 업체를 미국내 최고의 화분 제작사로 키우면서 경영자로 입지를 굳혀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신통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하여간 예술의 동지를 잃은 것 같은 섭섭함도 있었어요. 그런 그가 본연의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 나섰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잃었던 날개 찾은 듯 했었지요."

이병임 회장은 8형제중 둘째. 작고한 큰 오빠 이병승 선생을 빼고는 7남매(이병임, 이병항, 이병응, 이병동, 이병창, 이병정, 이병상) 모두 든든한 가정을 일구며 LA인근에서 살고 있어 모이면 40명쯤 되는 대가족이다.

LA 한인 사회에서 이병임 회장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오랫동안 미주한인예술인 총 연합회 회장을 맡아 오며 많은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통 무용을 넘어서 한국 전통 예술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한국 정부에서도 공로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홍익대학 미술대학 도예과 1기생인 이병응 선생 역시 미주 한인 미술계에서는 유명인. 모교인 홍익대학의 일을 위해서 늘 발 벗고 나서온 그는 후배들이 후원이 필요할 때면 누구보다 먼저 찾는 선배다.

하지만 영향력있는 이 두사람이 남매 지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색 않고 서로를 뒤에서 도와왔기 때문이다.

"문화계에서도 저희가 남매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동생이 2012년 아씨 마켓 2층 '애지 아트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열면서 우리가 친남매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지요."

이병응 선생은 열악한 환경의 한국 무용계에서 힘겹게 평론가로 활동하다 미국에 온 후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무용 평론의 길을 걷고 있는 누나를 지켜보며 "안쓰러웠지만 자랑스러웠다"고 말한다.

외롭고 힘겨운 예술의 길 가운데 특별히 무용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욱 힘겨운 고행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누님의 길이 늘 눈에 밟혔다"고 한다.

"미주예총 회장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우리 한국 전통 무용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한국에서 명인들을 초대해 이곳 무대에 세우는 일을 쉬지 않고 지속하는 누나를 보면서 그 강인한 의지와 실천력에 경탄하곤 해요. 여장부지요."

그는 지난해 이병임 회장이 한국과 미국의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무용평과 무용 관련 행사 보도, 인터뷰 기사등을 엮어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병임 무용 평론, 활동 자료집 1968-2013'을 펴냈을 때 "누님이 걸어온 길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병임 회장은 오히려 동생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저야 평생을 해온 일이라 딱히 다른 길을 걸어갈 엄두가 안나 이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평생 해 왔어도 힘겨운 예술의 길을 70세가 넘어 다시 걸어보겠다고 작심하고 밤 새워가며 그림 그리고 전시회 열면서 노력하는 동생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예쁘네요. 솔직히 저에게는 뒤늦게 복 터진 기분입니다. 생일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누나, 나오세요' 하면서 밥 사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던 동생인데 이렇게 곁에서 함께 길을 걷겠다고 손 잡아 주니 더 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어요."

2012년 한국과 미국에서 찍은 풍경 사진으로 전시회을 열었던 이병응 선생은 1년 후인 지난해 5월 팍 뷰 갤러리에서 50여점의 페인팅과 종이 조각품으로 개인전을 마련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현재 이병응 선생은 샌버나디노에 40년간 일궈온 '리스 포터리'의 역사를 보여줄 '리스 포터리 뮤지엄' 개원을 준비 중이다.

"1973년 처음 라시에네가에 오픈했던 상점 사진부터 그동안 제작해 낸 화분 등 동생의 이민 역사가 모두 전시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예술 동지이자 후원자인 누나는 기뻐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님 건강이 염려되긴 해도 한국으로, 오레곤 딸(포틀랜드주립대 미술과 김유나 교수) 집으로 잘 다니시는 것을 보면 아직은 건강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는 동생 이병응.

그의 바람이라면 누나와 함께 노후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 전시회 오프닝 때마다 "가슴에 꽃 달고 참석한 누님의 모습을 오래 오래 지켜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염원한다.

유이나 기자

▶이병응 선생

- 홍익대학 미술대학 도자기과 졸업

- 한국 주택은행근무(1967-1971)

- 미네소타 주립대학 도자기 연구원

- 대한민국 국전 입선(1964)

- 대한민국 상공미전 특선(국무총리상: 1964)

- 현재 남가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문회 상임고문/이사장

▶이병임 회장

-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미주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미주 예총) 회장 역임

-1995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예술인(서울특별시)

-2006 무용예술상(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

-2008 민족예술상(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상임위)

-현재 우리춤보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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